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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Oct 27. 2024

조금 이상한 설문조사

밀리의 서재에 읽을 책을 담아놓고 동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자. 지적 허영이 있지만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책보다는 인터뷰 집이나 에세이만 읽는 자. 상호대차도 열심히 빌리면서 집에서는 결코 책을 읽지 않는 자. 인간은 참 모순 덩어리다. 아니, 내가 모순 덩어리인가. 밀리의 서재에 담긴 책에 집중하자 다짐해놓고서 또 그렇게 상호대차 신청한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간다. “이것 좀 작성해주실 수 있나요?” 사서분이 설문지를 내민다. ‘과학고 설립을 지지하는 어쩌구저쩌구’. 자녀가 없어 과학고 설립에 특별히 관심도 없지만 설령 자녀가 있더라도 동네에 과학고가 있는 것이 내 교육열에 별로 영향은 없을 것 같아 ‘잘 모르겠음’이나 ‘중간’으로 체크하려는 찰나 동그라미 칠 수 있는 칸에 적힌 두가지 선택지. [매우 동의 / 동의] ???? 뭐지? 이 무자비한 설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문의 형태라면 [동의 / 비동의]가 있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저 설문을 받는 의도가 무척 궁금했다. 결국엔 과학고 설립에 반대하는 의견 따위는 받지 않고자 하는 설문 조사자(다음엔 어디서 받는지 물어봐야겠다)의 불순?한 의도가 담긴 설문지가 아니더냐!! 사서분이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뭐라도 선택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결국은 [동의]에 동그라미를 했다. 동그라미 하고나서도 찝찝함… 이렇게 반 강제적?으로도 설문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창의성과 참신함을 느꼈다. 다음에는 읽어보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마음을 굳게(생각보다 코 앞에서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먹고 거절해야지. 다음 날 상호대차 책이 또 도착했다는 알람을 받고 도서관에 또 방문했다. 설문조사를 들이미는 사서분께 “저 어제 작성했어요.”하고 선수를 쳤다. 휴… 나의 순발력에 감탄도 잠시 “남편분 이름으로 하나만 더 해주세요.” 아오- ”저 싱글이거든요!!” 라고 외치고 나왔어야 하는데 싱글이 죄도 아닌데 말도 못하고 엄마 이름으로 설문에 응하고 말았다. 왜 없는 남편까지 만들어서(물론 사서분은 40대로 보이는 내가 기혼자라 판단해버린 거겠지만) 설문을 하라고 하냐구요. 과학고 설립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매우 동의 / 동의] 선택지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구만 사서님의 강경?한 대응에 말려버린 나의 싱글로서의 정체성에 금이 간 것 같아 매우 찝찝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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