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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Oct 31. 2024

너의 효자손이 되어줄게

이런 제목의 노래가 있을 것만 같다. 다정함과 위트가 함께 느껴지는. 다만 반전인 것은 여기서 '너'는 人이 아닌 犬이라는 것. 나에게 너는 반려견인 코천이다. 기본적으로 온 몸에 털이 난 동물인 강아지는 피부 트러블이 잦다. 종의 특성도 있겠지만 환경적 특성도 무시 못해 여름에는 피부약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먹을 때는 간지러워하지 않지만 그 때 뿐이다. 트러블을 완화시키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완쾌의 개념은 날씨가 바뀌어야 가능하다)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이빨과 뒷발을 사용해 몸을 자주 긁는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처지(자기 침대가 있지만 사용해버릇 하지 않아 늘 내 요에서 잔다)라 보고 있으면 안쓰러워 보호자인 나는 효자손?을 자처한다. 몇 번 손톱?의 맛을 보더니 시원한지 곧잘 내 옆에 와 턱을 치켜드는데 역시 모든 동물은 학습의 DNA를 갖고 있어 무섭다. 효자손은 혼자 긁지 못하는 간지러운 곳을 긁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인데 기다랗고 끝이 각진 무언가만 있다면 대체 가능하다. 이 도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내 등을 긁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을 것이다. 긁어줄 사람이 없었다면 간지러움의 고통을 참아야 했을까. 어쩌면 이 도구는 긁어줄 사람이 없어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원래 모든 발명품은 필요한 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어쨌든 사람들은 이 도구로 인하여 사람의 손을 덜 필요하게 됨과 동시에 스스로도 등을 긁을 수 있는 자긁 능력을 획득한 것이리라. 편리한 물건은 어쩜 이렇게 자립(덜인간)지향적인지. 효자손이란 이름은 참 잘 지었지만 사람이 타인의 등을 긁어줄 일은 이제 상당히 드문 일이 되었다. 나 역시 등이 간지러울 땐 근처에 있는 30cm 자(괜찮아요, 나만 쓰니까)를 이용하곤 하니까. 그래서 코천이의 목이나 등을 긁어줄 때면 부모님 등도 안 긁어드리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나긴 한다. 스킨십의 효용에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고보면 내가 코천이를 긁어주는 것 같지만 나 역시 코천이의 체온으로부터 받는 것이 있는 것이다. 갸는 나한테 받으러 왔지만 나도 갸한테 받는 것이 있다는 것.(그래서 얘 표정이 이렇게 당당한가?) 긁어줄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너의 효자손이 되어줄게. 그리고 또 생각한다. 부모님께 효자되긴 그른 것 같지만 적어도 손으로 느껴지는 따뜻함은 잃지 말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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