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할아버지와의 생활은 뭐랄까? 평화로움, 그 자체야. 할아버지는 일흔네 살이야. 그저께 비엔나에 사는 큰딸이 보낸 메일을 보고 알았어. 생신 축하 메시지에 쓰여 있더라고. 물론 울릉도 작은딸도 통화로 축하 메시지와 함께 안부를 전했어.
나이에 비해 건강한 걸 보면 할아버지는 오랜 기간 자기 관리에 철저한 분임이 틀림없어. 일단 건전한 식습관, 하루 두 개비의 흡연, 수면 전 포도주 한잔, 정해진 시간 스트레칭, 하루 칠팔천 보 걷기를 꾸준히 실천하는 모습에서 느낄 수 있지.
흔히 홀아비에 대한 인식이 좀 그렇잖아. 추레하고 냄새나고 쓸쓸해 보이고 말이야. 할아버지와는 가깝지 않은 모습이었지.
요즘 할아버지는 할머니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한 권 한 권 꺼내서 정독하는 중인 것 같았어. 할아버지 서재에는 고서적과 근현대 역사서가 주를 이루고 있어. 미루어 짐작하건대 역사학자가 아니었을까 싶어. 할아버지의 전공서들 한편으로는 할머니의 책장이 생전 할머니 모습만큼이나 정갈하게 자리하고 있더군. 주로 문학 서적들이었어.
K처럼 박경리와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 많았고, M사의 익숙한 책 표지가 가지런히 꽂힌 책장 앞에서 반가웠어. 꼭 K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할아버지가 할머니 책장 앞에 서있을 때면 어쩔 수 없이 K 생각이 났어. 노량진과 서쪽 끝에 살고 있는 K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친밀한 정서를 교류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K가 동쪽 마을로 가기 위해 5호선으로 갈아탈 때가 있지. 합정동 쪽에서 마포 쪽으로 이동할 때는 확실히 K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 짜릿한 순간이지. 만물의 영장인 K도 나를 느낄까. 느끼지 못한다면 만물의 영장이란 게 무색하잖아.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라는 표현이 정말 가능하긴 한 거야?
오늘 할아버지가 할머니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어. 책상으로 가져온 책은 다름 아닌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야. 익숙한 책 표지였어. K도 읽은 책이었거든. 무채색 책 표지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진 건 왜일까. 할아버지 표정도 표지만큼이나 어두웠어.
표지를 천천히 넘기는 할아버지의 손끝이 떨렸어. 어떤 연유가 있음이 분명해. 그게 뭔지 알 수 있길 바랄밖에. 머리칼인 내가 지금 당장 할 일이 뭐겠어.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책장을 한 장씩 넘기던 할아버지의 손이 151쪽에서 멈췄어. 어떤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는 것 같았어. 할아버지 시선을 따라가 보았지.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게.”
글의 내용처럼 할아버지의 시선이 어두워졌어.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 걸까. 책 제목처럼 할아버지의 마음일까. 아니면 할머니의 생전 모습일까. 비엔나와 울릉도에 살고 있는 두 딸일까. 일주일 전 창덕궁 후원에서 함께 촬영했던 시니어 모델 북촌 할머니일까. 매일 아침 처연하게 내려다보던 한강 풍경일까.
추리작가가 작품을 쓰듯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의 생애가 궁금해졌어. 궁금한 것을 꼭 밝혀내야겠다는 집념이 발동했지. 그래, 머리칼인 주제에 말이야.
그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K가 느껴졌어. 서울역에서 신도림 쪽에 볼 일이 있는 걸까. 지금 막 버스에서 내려서 서울역 환승장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1호선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 내 특별한 능력에 대해 전에 얘기한 적 있던가? 10km 내외 거리에서는 K를 잘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슬프게도 머리칼인 난, K를 느낄 수 있는데 K는 나의 텔레파시에 반응할 수 없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