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같아서 그랬어.
나 이제 호구로 살지 않으리
곤두박질 쳐졌다. 너무 세게 부딪힌 바람에 휴대폰이 공중으로 붕 떴다가 가차 없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액정 면이 시멘트와 딱 붙었고 멀리서 보아도 크게 망가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도 산산조각 나버린 기분이다. 순간적인 일이었고 당황스러워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멍하니 서있었다. 나를 치고 간 아주머니는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도망을 갔다.
초록불이 깜빡깜빡거리다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서둘러 휴대폰을 주워 들고 빵빵거리는 경적소리를 피해 아주머니를 뒤따라갔다.
"저기요! 이렇게 세게 치시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아, 네. 미안합니다."
무심하게 인사만 할 뿐 버스에 타서 상황을 피하려고만 했다. 나는 깨진 휴대폰 액정을 눈앞으로 들이밀며 아줌마 앞을 막아섰다.
"이 휴대폰 보이시죠? 이건 보상받아야겠습니다."
말을 하면서 주변에 cctv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사고 장면이 찍혔을 법한 cctv가 보였다.
“저기 cctv도 찍혔네요. 이렇게 도망가시는 거 뺑소니랑 다를 바 없어요.”
내가 강하게 나오자 아주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그냥 엄마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줘요. 버스 타러 가려다 그런 건데 실수할 수도 있잖아? 아가씨가 똑바로 안 잡은 잘못도 있어. 보상 못 해!"
더 이상 말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느낀 나는 서둘러 휴대폰으로 112를 누르며 말했다.
“인정하기 힘드시면 112에 전화해서 cctv 영상 돌려보겠습니다.”
다행히 전화통화는 가능했다. 반대로 아주머니가 나를 딸 같이 생각했으면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아가씨가 참 깐깐하네."
신고한 지 10분쯤 지났을 때 경찰관이 왔다. 막상 경찰관을 마주하니 아주머니가 주춤했다. 각자 서로 다른 경찰관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신상을 모두 알려주게 되자 모든 일들을 순순히 인정했다. 거짓진술을 할 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에 겁을 먹은 모양이다.
마침 사고가 있었던 횡단보도 바로 앞에 휴대폰 서비스센터가 있었다. 경찰관은 지금 같이 들어가서 수리 견적을 확인하고 합의를 보라고 했다.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고 금전적으로도 적게 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코앞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 휴대폰 수리를 맡길 수 있었다.
평소 같은 성격이었다면 나의 부주의함을 운운하며 아주머니를 붙잡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더 이상 호구로 살고 싶지 않았고, 이런 부당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말 한번 못해보는 삶이 지긋지긋해서 용기를 냈다.
액정에 대한 견적서를 보니 35만 원이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금액이었고 아주머니도 당황했다. 이것저것 부담액을 낮춰보려고 필요 없는 조건들을 뺏다. 10만 원을 차감할 수 있었고 25만 원이 확정되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아주머니는 대뜸 내게 흥정을 시작했다.
“아가씨, 내가 20만 원만 내면 안 될까?”
나는 더 이상 봐줄 수 없어서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 말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놀라는 순간이었다.
“저는 여기에 대한 금액적인 부분을 지불해야 하는 책임이 없어요. 아까 35만 원이었던 금액을 25만 원까지 낮춰줬는데 이러시면 안 되지요. 지금 여기에 할애한 시간 하며 심적으로 받은 충격에 대한 보상까지 청구하고 싶은데 그런 부분 다 제외하고 진행하는 거니까 25만 원은 아주머니가 전액 지불하셔야 됩니다.”
말을 듣고 아주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수긍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휴대폰 액정이 수리되는 데는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을 나란히 앉아서 침묵하고 있을 때 도망치던 아주머니를 붙잡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혼자서 이 큰 금액을 감당하고 호구처럼 어디 가서 화풀이를 하고 있었을 터였다.
깨끗해진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가씨 미안합니다. 된 거지요? 가도 되지요?”
사과하는 태도가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부당한 일들을 당할 때 앞으로도 당당히 상황을 맞서야겠다는 다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은 각자 갈 길을 갔다.
사건이 종결되어도 놀란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서 빨리 누군가에게 오늘의 일을 말하고 싶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의 사건을 전했다. 친구는 이야기를 듣더니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고 말하며 웃어댔다. 그 웃음소리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나는 휴대폰 액정을 매만지며 말했다.
"나 이제 호구로 살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