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한인마트에서 아들과 함께 두부를 고르고 계산을 할 시점이었다. 음식 솜씨가 좋으신 한국인사장님은 계시지 않고 가게에는 근무하는 튀르키예인만 있던 주말, 그녀의 물음은 대뜸 이거였다.
튀르키예어를 조금 아는 듯한 나의 말투에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게 묻는 한 마디.
"건배, Ne demek?"
이스탄불에 살면서 대다수는 처음엔 나를 일본인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상당히 반가운 표정으로 한국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이미지는 과연 어떤 것일까?
가끔씩은 여기서 부자로 오해받고, 현지인보다 비싼 돈을 요구받기도 하고 때론 튀르키예인에겐 절대 말하지 않을 팁을 대놓고 요구하는 일이 있다. 4년 전, 이곳 정착 초기에 튀르키예어 학원에 가서 외국인 엄마들과 주로 나눈 대화는 '내가 이곳에서 받은 외국인 바가지'였다. 그리고 이 동네 학원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오랜 시간 수업을 했던 그녀는 외국인인 엄마들이 받은 바가지가 신기하지 않은지, 이전에 다닌 외국인 학생들을 예로 들어 나와 그녀들의 설움을 이해해 주었다. 그래도 그 시절은 한국보다 저렴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야채와 과일을 제외한다면 이곳의 지금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비싸다.
예전엔 퍽 저렴했던 많은 것들을 경험한 사람의 마음은, 살아가기 위해 매일을 소비해야 하는 일상에서 선택지가 없는 정답칸에 물음표 대신 마음에 들지 않는 무엇이라도 넣고 있어야 하는 것이 서러운 것이다. 마음속에선 이런 소리가 올라온다.
"예전엔 그래도 싸기라도 했는데."
주말의 한인 마트, 한국 사람보다 튀르키예인이 많은 공간. 그녀의 명확한 '건배'라는 말에 반가움이 몰려온다. 부족한 튀르키예어로 '건배'를 설명할 수 없는 나는, 결국 'cheers'라는 영어 단어 한 마디와 건배를 하는 손짓으로 의미를 대신했다.
세월이 바뀌어 외국인 가수인 브루노마스가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고, 한국인이라는 한 마디에 내게 환호성을 지르며 내년 서울 여행을 이야기한다. 말이 길어져 내가 튀르키예가 능숙하지 않아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니, 그녀는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젊은 그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노래 속의 한국어의 뜻을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인이 내년 봄, 서울 여행 계획을 셀레어 하는 지금.
마흔의 나는, 그렇게 젊은 튀르키예인 그녀 덕분에 알게 된 우리나라 가수의 로제의 노래 'APT'를 들으며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쉴레에서 잠을 자는 저 녀석처럼, 시작부터 벌써부터 졸리네요. 저는 이스탄불의 4년 차 말년 병장인가봅니다. 아하하. 그래도 신나는 음악으로 시작해 봅니다. 글을 쓰면서 행복한 시간들을 다시 기억해봅니다. 본 연재는 프롤로그를 제외한 전편이 구글 지도와 함께 하겠습니다. 건강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