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단어
나는 마른 비만에 저질체력이었다.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움직이지를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왜 내가 마른 비만이 됐지?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하고 계속 의심했다. 바보 같게도.
내가 마른 비만이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했다. 원체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서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작고 말랐다. 당연히 힘도 없었다. 게다가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나는 항상 집에 있었다. 밖에 나가서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책만 읽었다. 원체 약한 체력과 내향적인 성격의 환상의 콜라보로,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저질체력의 대명사로 살았다. 학교 갔다 올 때만 잠깐 걷고, 조금이라도 틈만 나면 눕거나 쉬기 바빴던 그때의 나에게 진심으로 꿀밤을 먹이고 싶다. 이 바보야. 그럴 시간에 나가서 걷기라도 하라고!라고 말하면서.
그 와중에도 먹을 건 정말 잘 먹었다. 아침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과자도 먹고, 빵도 먹었다. 학교 근처에는 편의점이 두세 개 정도 있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꼭 뭘 하나씩 사 먹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하느라 당 떨어진다는 핑계로 점심 먹기 전에 과자와 빵을 항상 먹었다. 달달한 꿀호떡빵은 매일 먹을 정도로 좋아했고, 초코우유는 물처럼 마셨다. 물을 그렇게 마셨으면 아마 지금쯤 피부가 촉촉하다 못해 아주 꿀피부였을 텐데, 물은 안 마시고 달달한 우유만 종일 마셔댔으니 원. 생각할수록 한심하기만 하다. 지금도 그때의 내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쯤은 과자나 빵을 조금씩 먹을 수 있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런데 그걸 매일 꾸준히 먹는다? 심지어 적은 양도 아니고 과하다 싶을 만큼 많이 먹는다? 이거는 당장 고쳐야 하는 습관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 짓을 반복했으니 6년을 날린 셈이다. 그때는 그게 안 좋은 습관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달달하고 맛있으니까 계속 먹었다. 몸에 안 좋은지도 모르고. 돈 쓰지 몸 망가지지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먹어도 운동만 하면 괜찮았을 텐데. 운동도 안 했다. 하루에 만 보는 커녕 오천 보도 안 걸었다. 한 이삼천 보 걸은 것 같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고, 내려서 학교까지 조금 걷고. 집에 올 때 다시 학교에서 정류장까지 걸어가고, 정류장에서 집까지 걷는 시간. 그 시간이 하루종일 내가 걷는 시간의 전부였다.
운동은 정말 하기 싫어했다. 하기 싫었고, 못했다. 어쩌면 못해서 더 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체력과 운동신경이 있는 친구들은 말로는 하기 싫다고 해도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수행평가나 반 대항 경기를 할 때 등) 놀랍도록 잘하던데 나는 아니었다. 눈에 띌 정도로 운동치였다.
고등학교 때 열 명씩 조를 나누어 오래 달리기를 했는데, 세 번째로 들어온 나를 보고 체육 선생님이 놀라며 한 마디 했을 정도였다. "너 늦게 들어올 줄 알았는데, 빨리 들어왔네?" 몇 년 전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대충 그런 뉘앙스였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그 한 마디에 무척 절망했다. 체육 선생님마저 날 그렇게 생각하시다니, 도대체 내가 그동안 어떤 이미지였던 거야...... 정말 지지리도 체력이 없어 보였나 보다. 그래도 유연성 하나는 좋아서, 중고등학교 내내 유연성 수행평가는 A를 맞았다. 말하면서도 머쓱하다. 자랑할 게 이거 딱 하나밖에 없다니. 나 참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구나 싶다.
슬슬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소설의 전개 과정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면 전개 부분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그때 처음으로 운동이란 것에 관심을 보였다.(다시 말하지만 난 운동의 운 자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발전이었다.) 그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면서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고, 기뻐하기도 했다. 그때 당장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도 꽤 기억에 남는 걸 보니 마냥 내가 헛된 일을 한 건 아니구나 싶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