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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14. 2017

그 여行자의 집 (7)

2015년 겨울, 서른여섯 단아의 그 해. #7

7.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삶은 매일 반복된다는 점에서 안정적이었지만 왠지 공허했다. 나는 그 공허의 구멍을 맥주 한 캔과 때마다 즐겨보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의 설렘으로 어쭙잖게 막으며 살았다. 어찌 되었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아내야 하는 것이 내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해외출장이 잡히고 외국과의 거래에 대한 업무가 늘어날 기미가 보이자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니던 영어학원 새벽반에서 재현을 만났다. 곧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이 아니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다섯 살이나 어린 그 남자의 데이트 신청을 당황스럽고 끝이 보인다는 듯이 웃으며 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곧 서른이었고, 허술하게 메워진 삶의 공허에 대한 인지는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내 삶의 의미 있는 기회들은 모두 지나 가버린 것만 같았기에 애써 담담한 척 그가 내민 영화 티켓을 받아 들었다. <워낭소리> 낯선 제목이었다. 혹시라도 삶에 새로운 바람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그와의 데이트는 상상도 못 한 영화의 지루함과 그런 영화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 남자에 대한 당혹스러움으로 끝났다. 나는 그와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를 피할 필요도 없이 한동안 일이 바빠 학원에 가질 못했고, 두 차례 걸려 온 그의 전화를 고민할 여지도 없이 운 좋게 받지 못했다. 그해 초여름엔 내 생의 첫 해외 출장이 있었고, 출장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휴가를 내고 주말을 껴 나흘간 홍콩에서 보냈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예약된 숙소를 찾아가면 되었고 주요 볼거리들도 미리 다 정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공항 밖으로 혼자 걸어 나가는 순간, 자신의 택시를 타라며 대거 다가와 호객을 하는 택시기사들이 사이에서 낯선 세계에 혼자 떨어져 버린 느낌을 받았다. 설핏 대학을 가기 위해 혼자 서울에 올라왔을 때의 설렘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럽던 기분이 기억났다. 지금은 퍽 익숙해져 버린 그 세상도 한때는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줄 모르겠는 낯설고 인상적인 세상인 적이 있었는데…. 무사히 도착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기숙사 이후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과 섞여 자는 도미토리에서의 숙박이 편치는 않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을 보니 그 청춘의 화기애애함이 부러웠다. 삼일 밤 내내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사람들이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각자의 여행담을 쏟아 놓았는데 나는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음에도 가장 여행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도 삶을 더 멋지게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벌써 늦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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