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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14. 2017

그 여行자의 집 (8)

2015년 겨울, 서른여섯 단아의 그 해. #8

8.

그해 여름이 시작되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을 때, 재현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어느덧 석 달이 지난 후였다. 우연히 복도에서 만난 그는 나를 보자 너무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이 그가 반갑게 느껴졌다. 원래 그 학원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도, 누군가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뭔가 집에 온 느낌이 들었달까? 그 후 한 차례 더 그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영화는 <업>이라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둘 다 할아버지가 주인공이고 노부부가 주요 인물로 다뤄져서 인지 뭔가 묘하게 그와 본 <워낭소리>가 생각나는 하는 영화였다. 그는 두 영화를 나와 보기 전 혼자 먼저 봤었고, 꼭 같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 마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이런 영화를 두 번씩이나 보는 그가 변태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 더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그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수줍음이 많았지만,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고 나름 무른 듯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은 뚜렷한 사람이라고 느껴져 나는 점차 그에게 작가라는 직업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의 나이가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남자들처럼 허세를 부리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은 아니었는지라 점차 그를 편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오히려 내 나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가 정말 그 숫자에서 자유로운 건지, 본인보다도 어려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 나의 동안 외모 때문에 나이 따윈 별것 아니라 치부할 수 있는 건지. 그는 그저 나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좋기도 했지만, 가끔 내 나이를 자각할 때면, 화들짝 놀라며 이제 결혼도 애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더 열심히 일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와는 차라리 그냥 친구였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던 그의 유한 면이 이렇게 원망이 되어 남게 될 줄 알았더라면 쉽게 나의 작은 방에 오고 싶어 하는 그를 허락하지도, 그가 내민 손을 용기 내 잡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를 만난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친구가 아닌 연인이었기에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이 슬프다. 내가 가지지 못한 감성적인 면과 섬세함을 가진 그에게 참 많이 배우고 감동했었는데. 연인이었지만 그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은 주변 사람이기도 했는데. 이제 모든 게 끝났다.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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