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자 Jul 15. 2017

그 여行자의 집 (9)

2015년 겨울, 서른여섯 단아의 그 해. #9

9. 

이런저런 생각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방에서 멍하니 벽을 쳐다보고 있는 꼴이었다. 사 년째 사는 나의 작은 집. 10평짜리 원룸형 스튜디오의 네모진 천장, 수북하게 소설이 꽂혀있는 책장, 식탁을 겸하는 책상, 계절별로 몇 벌 안 되는 옷들이 정리된 간이 옷장, 매트리스 두 개를 겹쳐 놓은 싱글 침대, 한쪽 구석에 기대 있는 가끔 손님이 오면 펴는 접이식 식탁,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전구색 스탠드. 그 외 꼭 필요하지 않은 장식이나 가구는 하나도 없는 썰렁한 공간이었다. 물론 취향의 문제라 할 수도 있겠지만, 10년 동안 일해서 내게 남은 것이 이것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 고되게 투병을 하며 모두를 지치게 해 차라리 떠나 주길 바라던 가족들의 염원을 담아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버지, 사라진 엄마, 서먹해진 동생. 그리고 헤어진 남자 친구. 모두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내 삶의 가장 큰 위안이 되어주는 경화도 곧 돌아올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나면 내게 소홀해지겠지? 그럼 내겐 무엇이 남을까? 지긋지긋한 박 부장, 늘 눈치만 보고 누구에게 일을 미룰까 고민하는 얄미운 정 대리? 말을 지지리 못 알아듣는 신입? 몇 남지 않은 입사 동기들? 하아…. 엄마는 대체 어디를 간 걸까? 눈에 그렁하게 물기가 베이더 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체 무엇을 하고 산 건지. 설움이 복받쳐 한바탕 엉엉 울고 나니 서러움이 좀 가라앉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떠나야겠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겠지? 마땅한 기술도 없는 내가 10년이나 일한, 적어도 안전한 급여는 보장받을 수 있는 준공무원 자리를 그만두고 무작정 떠나겠다고 하면 아깝다고 난리겠지? 뭐 상관없다. 난 이제 병원비를 대야 할 아픈 아빠도, 말리고 구박할 엄마도 없는걸. 진아야 자기가 알아서 살겠지. 남자도 없는데 결혼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겠지? 누군가 아쉬워할까? 뭐, 내 알 바 아니다. 아니 누군가는 아쉬워해 주었으면 좋겠다. 핸드폰 메신저를 뒤적이다 이름을 찾았다. 반민주. 프로필 사진의 그녀는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걷고 있다. <바람따라 길 따라>라는 상태 표시 글이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본 지 한 3년은 된 것 같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메시지를 보냈다. 


민주 씨 잘 지내요? 나 이단아인데, 기억하려나?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첫 번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