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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sian Nov 05. 2019

삶을 U턴하는 결정적 순간

그 남자의 인생 소확행  <커다란 나무>


일이 거의 다 끝날 무렵, 기술자가 비서한테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남은 뿌리가 옆에 있는 나무의 뿌리와 단단하게 얽혀 있어요.
“그럼 뿌리를 자르세요.”
”그걸 자르면 아마 이 나무는 괴로워하다가 죽을 거예요.”
“그럼 옆에 있는 나무의 뿌리를 잘라 버리세요.”
“그 나무도 똑같이 죽을 텐데요.”
비서는 고민을 하다가 아저씨한테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크게 화를 냈습니다.
“옆에 있는 나무도 사 버리면 될 거 아냐!”
「커다란 나무」
레미 쿠르종 글 그림, 나선희 옮김,
시공주니어(2006)


커다란 판형을 가득 채운 초록나무. 밑바닥 뿌리까지 무자비하게 패인 장면을 스케치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깊은 밤. 힐링, 충전하겠다고 펼쳐 든

그림책을 보다 말고, 이 남자 뭐지? 부자 아저씨의 욕심보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씩씩대며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다.

(집에서 아이에게도 수없이 읽어주고, 지난해 학교 1학년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그림책 모임에서도 낭독했던 책인데 고요한 밤, 홀로 마주한 그림책에서 꽉 찬 그림만큼이나 나의 감정을 이렇게 커다랗게 응시할 수 있다니. 새롭게 느껴진다)


자기 집에 놓겠다고 수십 명의 기술자를 불러다가 커다란 나무의 흙뿌리를 파게 만드는 사람.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뿌리 하나가 옆에 있는 나무뿌리와 얽혀 있는 바람에 일이 꼬인다. 나무로선 생사가 달린 결정적 순간이다. 그 성격 그대로, 그리 생겨 먹은 대로 양 볼에 심술보 가득 물고 이대로 직진하고 말 것인가. 정말, 그렇게 사실 건가요. 무엇 때문이죠? 도대체? 그림책을 보다 말고 수없이 혼잣말로 묻고 또 묻고 따졌다. 이 아저씨 심보가 너무 고약해서, 너무 못돼서, 너무 이기적이어서.

아저씨는 하는 수 없이 옆집 주인을 찾아가는데.....
 


일평생 삶이 담긴

아몬드 비스킷과 차를 맛보다


주인 할머니는 마침 기다렸다며 아몬드 비스킷과 차를 내온다. 과자와 차를 맛보며 할머니의 눈과 마주친 순간. 아저씨는 그 전까지의 기분과 감정과 모든 화를 내려놓게 된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비서의 뺨을 후려치고 원하는 무엇이든 돈으로 사려했던, 요즘 말로 치면 슈퍼 갑질러로서 탐욕의 끝을 보려 했던 이 남자. 타고난 그대로 곧이곧대로 직진하고 들이받아도 모자랄 성격인데 너무나 갑자기! 갑자기 분위기 침착 모드로. 비스킷 한 조각 베어 물고, 차 한 모금을 적시고 할머니의 눈을 마주하고 나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그렇게 된다. 그 누구라도 할머니 앞에 앉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분명.



Turning point

삶의 결정적 순간이 여기에


영혼을 울리게 한 무언가의 힘. 할머니의 내면엔 그 누구도 흔들지 못할 강한 내공과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철학이 있다. 조그만 집 한 채, 작은 앞마당에 그늘을 드리운 나무 한 그루, 버들가지로 엮어 만든 의자, 그곳에서 누리는 달디 단 낮잠과 차 한잔, 게다가 자신만의 레시피로 구운 비스킷까지......
 

할머니의 인생철학이 담긴 비스킷과 차를 먹은 이상 그는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게 된다. 아마도 이제껏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었던, 말로 표현 못할 무언가를 맛보았으니까. 아저씨에게 할머니표 비스킷과 차는 잊지 못할 소울푸드이자 인생 디저트가 된 것이다. 그는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삶의 방향키를 움켜쥔 채 과감히 U턴을 택한다. 어떻게 되었을지는 그림책에서 확인해 보시길...


조용한 슬로, 스몰 라이프를 지향하던 할머니로선 절대 상종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과 비스킷과 차를

나누는 시간이 생겼다. 고요한 삶에 찾아와 준 늦깎이 친구가 팔십 평생 구운 과자를 먹고 개과천선했으니 평생 친구가 된 셈. 삶의 결정적 순간은 이리 우연히도 갑자기 찾아온다.


이 그림책의 작가 레미 쿠르종(프랑스 작가 1959~)은 마르셀 푸르스트가 말한 마들렌과 홍차에 대한 오마주를 그림책에 담았던 것일까. 잠시 무언의 시간으로 깊이 빠져든 부자 아저씨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의 문장을 더듬어가며 그 마음을 따라가 보려 한다.



콩브레에서 내 잠자리의 비극과 무대 외에 다른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랜 어느 겨울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Petite Madeleine)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하게 여기게 했다.

                                   *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
나는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아무런 논리적인 증거도 대지 못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앞에서 사라지는 그런 명백한 행복감과 현실감을 가져다주는 이 상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_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푸르스트, 김희영 옮김, 민음사(2012)
p. 86-87중에서



p.s

이 구절을 읽다가 그림책 커다란 나무의 부자 아저씨와 할머니가 생각난 것도 내겐 결정적 순간.

그나저나 푸르스트의 프티트 마들렌, 할머니의 아몬드 비스킷. 어딜 가면 맛볼 수 있죠?!

지금 가장 궁금한 결정적 질문!

글 올리는 오후 3시를 향해가는 시간,

너무나 적절히 티타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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