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박사졸업식을 앞두고
오늘 아내는 박사학위를 받는다. 매미는 땅속에서 애벌레로 7년을 보낸다고 한다. 아내는 무려 매미 애벌레보다 더 오랜 기간을 박사과정생으로 지냈다. 아내는 오랫동안 박사과정생으로 있던 걸 부끄러워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포기하지 않고 끝맺는 것 자체로 대단한 능력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좀 늦으면 어떤가. 아내의 삶에는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순간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축제다. 아내, 엄마, 며느리, 딸, 동생, 형수, 형님의 졸업을 축하하겠다며 양가 가족들이 모일 예정이다. 평일임에도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서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다. 명절에도 이렇게 양가 가족이 모인 일은 없었다. 그만큼 아내는 가족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이겠지. 아내는 가족들에게 꽃다발을 사 오지 말라고 했다. 자기가 들 꽃이니 자기 마음에 드는 꽃을 사고 싶다며, 미리 꽃집에 주문을 해놨다고 한다. 꽃값은 5살 아들 한울이가 내기로 1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한울이는 엄마 졸업식 꽃다발 사준다며 지난 구정에 받은 세뱃돈을 고이 잘 간직해 왔다. 그래. 돈은 이럴 때 써야지.
박사 공부를 하는 동안 아내는 꽤나 성숙해졌다. 인격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앞으로 누구의 아내, 엄마, 며느리, 딸이 아닌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나아가기를 응원한다. 아내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상큼상큼 행복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아내를 데려가는 조직은 복 받았다 생각할 것이다. 그건 12년 같이 살아본 내가 장담할 수 있다. 다만 수다쟁이라 가끔 귀가 먹먹해지는 건 감안해야 한다.
어제는 졸업하는 아내와 졸업 가운을 빌려서 미리 사진을 몇 장 찍어뒀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다가도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아내 사진을 계속 보게 된다. 이렇게 귀엽고 이쁜 박사가 또 있을까? 사진을 보며 나도 계속 미소가 지어진다. 뜬금없지만 잊고 있던 다짐이 떠오른다. 다시 태어나도 아내랑 결혼해야지. 며칠 전에 물건 정리하는 일로 아내에게 소리 지르고 다퉜었는데. 뒤늦게 후회가 된다. 이 사람이랑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외에는 더 바랄 게 없다. 방 어지러운 것쯤이야. 내가 치우면 되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면 백 번이고 더 져야지.
이제 학교에 먼저 가 있는 아내를 보러 간다. 아침에 봤는데도 벌써 보고 싶네. 만나면 꼭 안아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