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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Oct 22. 2022

한달 to 전일

100일 - 다섯 번째



딱 한 달이 흘렀다.


코로나19 당시 확산하던 감염자 숫자처럼 단기간에 동요하는 사람들이 폭증했다.

TV 방송이 대부분이었던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젊은 층이 특히 늘었다. 유튜브 등 온라인 매체를 통한 정보의 확산 속도는 걷잡을 수 없었다.


오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그것을 알려드리마’ 채널의 이번 주 주제인 ‘콩나물처럼 털도 어두운 곳에서 더 잘 자랄까?’ 편은 업로드 몇 시간 만에 천만 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게다가 영상 말미에 붙여진 다음 편 예고로 댓글 창은 폭발 직전이었다. 다음주 주제는 ‘과연 성소수자는 둘 중 어느 부위의 털을 기를까?’였다.

수많은 여성 구독자를 보유한 뷰티 채널에는 화장품 리뷰 대신, 최근 출시된 발모 영양 크림들에 대한 비교 리뷰 게시물이 올라왔다. 발모에 도움을 준다는 스트레칭 법을 고안해서 구독자 수가 열 배 이상 불어난 홈 트레이닝 유튜버도 있었다. 그 유튜버는 가슴팍의 커다란 브랜드 로고를 박스테이프로 가린 트레이닝 복을 입고 활짝 웃으며 만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겨드랑이는 박스테이프로 가리지 않았다.

물론 모자이크 처리도 없었다. 클로즈업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라고 하늘은 생각했다.


가짜뉴스도 판을 쳤다. 부부인 경우 둘 중에 한 사람만 털 길이를 충족해도 신인류에 들 수 있다는 소문이 각종 SNS와 메신저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여파로 인기 있는 배우자의 기준도 바뀌어버렸다. 결국, 유명 BJ 채널의 이상형 월드컵 남자 연예인 부문 우승은 ‘코털 없는 박서줌’을 제치고 ‘코털 2미터 조세모’에게 돌아갔다. 여자 연예인 부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코털과 겨털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1센티 보장’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며 가짜 영양제 뒷광고를 한 유튜버는 논란이 일자 모든 영상을 삭제하고 채널을 중단했다.

번데기를 먹으면 누에고치처럼 털이 잘 자란다고 떠들던 사람은 알고 보니, 1년 전에는 털 없이 매끈한 피부 만들기에 번데기가 특효라며 정반대로 떠벌렸던 작자였다. 이 모든 사태가 정부의 조작이라며 정치 비난으로 몰고 가는 이도 있었다. 이 사람은 ‘미세먼지 사상 최악’ 기사와 ‘손홍만 200호 골’ 기사에도 정부의 조작이라는 댓글을 복사해 남겼다.


6월로 접어들자 중고 거래 앱인 ‘연근 마켓’에 올라온 게시물에서는 10센티가 넘는 털 10가닥에 10만 원이 넘어서고 있었다.

‘제가 좀 풍성한 편이라 나눔해요. 좀 민망한 부분이라 실 샷은 못 올리지만 작년 1월부터 기른 본인 털 100퍼센트 맞아요. 장난으로 찔러보기는 하지 마시고 정말 사실 분들만 챗 주세요. 쿨거래 시 교통비 정도는 빼드립니다. 그리고 가끔 남자분들이 연락하시는데 하지 마세요. 안 팔아요. 변태는 사절입니다.’

이날 포털 검색어 1위는 ‘털 10만 원’, 2위는 ‘10센티 녀’ 3위는 ‘연근 마켓’이었다.

대략 두 달 만에 모든 가치의 평가가 오직 ‘털’을 기준으로 이뤄지게 되었고 하루하루 그 가속도는 어마어마했다.


하늘과 현민도 넋 놓고 관람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에 근거한 방법부터 소문에 불과하지만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방법까지 모두 검토한 후 전략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현민은 모발 관련 지식을 검색하여 주어진 기간 내에 10센티미터까지 기르려면 코털보다는 겨털 쪽의 확률이 그나마 더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하늘은 바르는 영양 크림부터 먹는 영양제, 운동법 등 모발 성장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은 전부 실행에 옮기는 ‘육성전략’을 실행했고, 현민은 기르는 대신 10센티미터가 넘는 사람 털, 동물털, 인조털 등 각종 모발을 주기적으로 코에 심는 ‘이식전략’을 선택했다.


현민은 처음엔 나중에 심어도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조심성이 많은 하늘의 뜻에 따라 느닷없이 일어날지 모르는 ‘변수’를 대비하여 2주마다 조금씩 이식하기로 했다. 그 ‘변수’라는 것은 외계인이 일정을 앞당긴다거나(일방적으로 통보했던 그들의 성향을 생각할 때 가능성이 충분하다.), 털을 도둑맞는다거나(털 지상주의로 흐르는 현 상황에선 ‘눈 뜨고 털 베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기한이 임박하여 ‘털’ 대란, 혹은 ‘이식’ 대란 사태가 발생하는 사태(돈이 있어도 대기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다.) 등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운명의 그날, 외계인의 평가 기준에 둘 중 한 사람만 합격했을 경우를 대비한 ‘혼인신고’도 강행하기로 합의했다. 우선책과 차선책은 물론, 둘의 머리로 짜낼 수 있는 비상 대비책까지 총동원한 것이다. 털 하나 때문에 억울하게 ‘삭제’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혼인신고는 결정한 김에 바로 하러 갔다.

사실, 결혼이라는 의식 자체에 둘 다 로망이 없는 타입이라 그냥 동거를 해왔을 뿐, 서로를 인연이라 생각했고 헤어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며 혼인신고에 딱히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운명의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접수처는 시장바닥보다 붐빌 것이기에 하루라도 빨리 처리하는 편이 나았다.


관할구청 앞에는 입구 좌·우측으로 시위가 한창이었다. 우측으로는 반외(계인)파가 좌측으로는 친외(계인)파가 대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던 친외파의 구성원은 타락한 인류에게 보내는 신의 경고라고 외치는 신흥종교집단이 다수였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주장하는 유교 단체 및 겨드랑이 제모에 반대하는 여성인권주의자들도 있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의 생각은 정말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진지했지만, 이 모든 일이 외계인 때문이라는 게 우스워져서 둘은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 피식했다.

둘로 나뉜 시위대를 결혼식 하객 삼아 하늘과 현민은 행진하듯 그 사이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7월이었다.

그날이 코 앞이었다.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걱정이 커질수록 시간은 무식할 정도로 빨리 흘렀다. 하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NASA가 진행 중인 우주선 프로젝트에 탑승이 정해진 글로벌 상위 0.00...001%에 해당하는 초 일류 인재들과 재벌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아침마다 코털을 깔끔히 정리했고, 매끈한 겨드랑이에 데오드란트를 바르고는 상쾌한 날갯짓을 해댔다. 동요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전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극소수만을 살리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며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국제 테러 단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우주선의 위치를 추적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위치는커녕 우주선 바퀴 자국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자 인터넷에선 한동안 잠잠했던 미국 네바다주 51구역 외계인 음모론이 또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몸에 난 털을 절대 자르지 않는 풍습을 지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일부 소수민족들도 전혀 불안한 기색이 없었다. 뉴스 자료화면 속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은 하나같이 너무도 풍성한 모습이었다. 외계인들이 코와 겨드랑이가 아닌 다른 어떤 부위의 털을 요구했더라도 자신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종교인들은 다른 의미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생존에 대한 확신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삭제’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의 구원을 받을 거라는 신념으로 더 열심히 찬양하고 더 많은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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