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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ug 04. 2020

고민이 필요 없는 기쁨


 며칠 전에 사촌오빠의 첫째 아들이 갑작스럽게 하늘나라에 갔다.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중학생이 된 참이었다.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징조는 없었다. 여느 날의 밤과 같은 밤이었고 아이는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삶을 살아왔었다. 아이 앞에는 무궁무진한 삶이 놓여있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날 밤 눈을 감기 전까지 아이 역시 그러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병명은 선천적 뇌혈관 기형으로 인한 뇌출혈이었다. 그런 것이 생기는 까닭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수많은 장례식에 가보았지만 어린아이의 장례식의 가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기가 겁이 났다. 하루 전 까지도 예기치 못했던 죽음을 맞닥뜨린 이들의 마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한바탕 슬픔이 휩쓸고 간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가끔 농담과 웃음도 오갔다. 사람들은 대체로 죽음과 전혀 상관없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풍경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곳에 앉아 동태전과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삽시간에 사라진 누군가의 몇십 년과 상관없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아니 돌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영정사진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초등학교 졸업사진이었다. 사진에서 아이는 꽃다발을 들고 웃으며 꽃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아래에 놓여있는 꽃바구니에는 하얗고 커다란 꽃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가'라고 적힌 글씨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어렸을 때 큰아빠를 좋아했다. 큰아빠는 미남이셨고 부산에 있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통닭을 사주셨다. 서울에 가면 사촌언니나 사촌오빠가 맛있는 것을 사주도록 했다. 사촌언니와 함께 간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동생과 나는 처음으로 그라탕을 먹어보았다. 나는 그때와 달리 백발로 뒤덮인 큰아빠의 뒤통수를 몇 초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큰아빠는 그날 하루 종일 손자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했을 것이다. 아빠에게 그 소식을 전하며 큰아빠는 울먹거렸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큰아빠는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동생이 새로 취직한 직장에 대해 물었다. 궁금하지도 않을 그런 질문을 손자의 장례식장에서 건네는 큰아빠의 심정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동생과 나는 다음 날의 출근을 위해 늦지 않게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이후 나는 장마가 지겹게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 연애에 대해서, 요즘 하는 운동에 대해서, 그 날 먹은 점심 메뉴나 아침에 직장동료가 건네어 준 음료수, 잘 풀리지 않은 일들,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한 사소한 근심에 대해서, 하루가 참 바쁘고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에 대해서, 벌써 8월이고 여름이 이렇게 재빠르게 지나가버릴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떠들다가 자주 망연해졌다. 한순간에 끝난 누군가의 삶과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나가야 할 삶을 뒤로한 채 여전히 존재하는 나의 투정과 고민과 아픔이 볼품없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내일이 없을지 몰랐다. 그래도 여전히 아픈 일은 아팠고 싫은 일은 싫었고 기쁜 일은 기뻤고 우스운 일은 우스웠으며 미운 사람은 미웠다. 나는 그렇게 같은 박자로 흘러갈, 죽음이라는 것을 아주 가까이에 두고서도 대개 실수로 가득할 삶에 대해 생각하며 빗소리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앨범을 들었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찔끔 났다. 그 시간이 슬프면서도 좋았다.


  작년 겨울 첫눈이 오던 날이었다. 나는 학교에 있었고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수업시간이었지만 모든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왔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어린 시절 눈이 왔을 때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며 밖으로 뛰어나갔던 것을 떠올렸다. 고민이 필요 없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불행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낸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금의 기쁨에 충분히 기뻐하는 일뿐이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며 꽃다발을 내려다보고 지었던 웃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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