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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06. 2024

강릉은 내게


바닷가에서 산을 그렸다


허기에 날이 서

앙상한 등 뒤로 해풍이 불면

민둥산 억새밭에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는

꿈을 꾸었다


늙은 소나무 삭정이 타는

바튼 소리와

연기처럼 자욱하던 싸리꽃의

선명한 지문들

바위산 절벽으로 옮겨 피던

진달래가 그리웠다


닿을 수 없어 쳐다만 보던

천상의 백봉령 석병산 산벗꽃들

눈부신 계절들이

하나 둘 부서질 때마다

소금기에 전 불빛들로

발목이 시린 동부시장


군내 나는 포장마차

구석진 자리 하나 빌려

경월 소주를 마실 때면

술잔에서

맑은 여울물 소리가 났다


주여!

가난한 폐를 거두어

은하수가 강물처럼 흐르는

저기 저 신령의 산으로 돌아갈

길을 일러주소서


샛별이 뜰 때까지 기도를 해도

홍해는 끝내 열리지 않아

아득하기만 하고

동이 틀 무렵이면

거리에 깔리는 자욱한 햇살들

버스터미널 대합실 삐걱이는

나무의자에 앉아

마른 먼지를 털다

먼 산으로 떠나는

완행버스 꽁무니로

손을 흔들며

늦도록 멀미를 했다


나의 진달래는 언제나

손을 뻗쳐도 닿을 수 없는

벼랑의 끝이었고

무리 진 산벗꽃은 바라만 보는

그리움이란 것을 알았네


삽당령을 넘으며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찬란한 가을 단풍을

끝내 보지 않았다면

난 지금


요란한 불빛 십자가 아래

골목의 어디

비틀거리는 술집

나비넥타이를 맨 뽀이의 꿈을

이루었을지도


점멸의 건널목에서

사람을 불러 세우는 삐끼로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강릉은 나에게 갈 수 없는

산으로 가는 길만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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