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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SIL Nov 01. 2020

epilogue. 여행이 별것인 나날

여행자가 코로나 시대를 적응하는 방법

청소든 공부든 과제든 싹 몰아서 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래서 연중 내내 움직이지 않고 일만 하다 한번에 머얼리 연락도 되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가버려서 가슴속을 뚫어버리는 게 내 1년 루틴이었다.

여행을 떠나 1~2주간 아무 생각없이 걷고 먹고 싸고 자면서 다음 여행까지 견뎌낼 힘을 얻곤 했다. 어딘가 힘들게 올라간 멋진 전망 앞에서, 역시 이게 내 스타일이야,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2020년, 그런 내 루틴이 무너지고 말았다.
 

여행이 별건가? 응. 별거야!


그놈의 팬더믹때문에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이 많은데, 다행히도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타격이 적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여행못하는 걸 불평하는 게 배부른 소리려니 지냈는데- 2020년이 달랑 두달 남겨놓았는데도 여전히 다음 여행을 꿈도 못꾸는 이 상황이 기가막히다. 일년을 여행을 계획하고 기다리는 맛에 사는 나였는데, 내 일년 어디로 갔지?
 

일 외에는 여행과 덕질 뿐인 1인가구인 나는, 일에 몰두하고 집에 온 뒤의 많은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몇달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사적인 생활의 대부분이 덕질에 집중되었다. 열심히 집중할 일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덕질의 정수는 치열하게 티켓팅하고 콘서트갈때가 찐인데, 덕질도 큰 타격을 받은 셈이다. 올 2월 눈물을 머금고 취소한 여행이 바로 해외콘서트 겸 여행 컨셉이었으니...솜사탕씻은 너구리 그거 나야나...

솜사탕씻은 너구리만 보면 눙물이 나...


여행하는 내가 아닌
일상의 나는 어떤 사람이야?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이란 단순히 휴식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성취이기도 했다. 혹은 자존감까지도 여행에서 찾았던 건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는 강렬한 경험을 해내고 오면, 새로운 경험을 +1한 나로 업데이트한 느낌이 든다. 실체가 그렇든 아니든, 행복을 얻었으니 아주 유용한 나름의 정신승리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런 쉬운 방법을 쓸수 없게 될 줄이야.

스스로에게 줄 선물이 없어진 셈인데, 나에게 여행말고 뭘 줘야 하나? 나는 일상의 나를 잘 돌보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날 게으르게 누워있던 주말, 충동적으로 챌린저스(돈을 내고 습관을 억지로 하게 하는 앱-글 참고)의 ‘매일 산책하기’와 ‘주 1회 등산하기’ 챌린지를 결제했다. 매일 하루 20분 산책과 주 1회 등산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게으른 내가 밖으로 나가겠다 싶었다.

 

매일 저녁 하루 20분 개와 산책하는 이웃들을 구경하며 옆 아파트단지를 빨빨 산책을 하고, 주말엔 근처 아차산을 오른다. 마스크를 끼고 등산을 하는 게 꽤 힘들지만, 탁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풍경맛집 아차산 언덕에서 기분좋은 바람에 땀을 식히며 물을 마시니 꿀맛이 따로없다.

아차산에서 보이는 서울

1년치 몰아서 주던 선물을 이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나눠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새로운 정신승리법을 찾아낸 건가?


여행이 별건가, 그냥 오늘 걸어!

이번 주말엔 지하철을 더 타고 나와 인왕산에 올랐다. 요즘 하늘색깔은 구름도 없이 예쁘게 파랗다. 내 속도대로 서울성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멋들어진 소나무 뒷편으로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스크를 끼고서라도 이리 멋진 광경을 걸어서 다닐수 있다는게, 감사한 일이다.

서울성곽길은 정말 짱...인왕산에 오르는 길


어디곳이든, 언제든, 걷는다는 것은 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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