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6)
고작 남한의 반 크기인 스리랑카가 참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한 바 있는데, 그 중 하나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호튼플레인즈(Horton Plains)국립공원이다. 호튼플레인즈는 하퓨탈레에서 한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자리한 스리랑카의 해발 2,000미터 이상의 고원지역으로, 이 지역에만 750종의 식물과 100여종의 동물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런 설명을 들어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미 스리파다나 하퓨탈레, 시기리야 등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곳들을 갔다온 상태였고, 뭐 더 쎈게 있겠어? 싶었다.
하지만 반전. 새벽에 투어밴이 실어다 준 곳은 남미 파타고니아나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가 연상되는 초원이 펼쳐져있다. 아니, 이런 작은 섬나라에 이런 곳까지 있을 일이야?
마치 다른 나라에 온듯한 초원을 한참 지나 어느 입구에서 벤이 멈췄고, 현지 물가치고는 꽤비싼 입장료를 지불했다. 잠깐 기다리는 사이 Sambar라 불리는, 순록 형제같이 생긴 동물 친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귀신같이 도시락있는 가방을 찾아내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으나 음식을 주면 안된다고 한다. 간신히 쩝쩝거리는 표정을 카메라로 잡아냈다.
다시 차를 타고 달려 국립공원 입구인 트레킹 출발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려면 소지품 검사를 해야한다. 라이터는 물론 그 어떤 비닐류도 들고 들어가면 안되고, 심지어 페트병에 붙은 라벨까지 뜯어낸다. 종이봉투를 나눠주고 모든 쓰레기는 다시 가지고 나와줄것을 여행객들에게 당부한다. 와, 국립공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들어가보니, 역시였다. 쓰레기 하나 없는 탁트인 초원 길에 맑은 공기로 기분이 좋아진다. 불과 한두시간 거리에 열대우림도 있고 차밭도 있는데 여기는 세상 고요한 초원이 펼쳐져있다니, 참 신기한 섬이다.
호튼플레인즈의 일부를 한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는 무려 World’s End라고 이름 붙여진 절벽 포인트와 Baker’s fall 폭포를 들렀다가 나오는 9km정도의 큰 오르막 없는 길이다. 나무가 별로 없어 낮엔 무척 뜨거울듯 하지만 아침의 공기는 차갑고 깨끗하다. 새벽같이 트레킹을 시작하는 이유가 있었다. 기분좋게 세상의 끝으로 한번 가볼까?
영화에 예고편이 있는 것처럼, World’s end의 맛보기(?)를 볼수 있는 ‘작은 세상의 끝(Mini World’s End)’이 있다. 미니 사이즈 절벽이라는데 여기도 나름 멋있다. 좀 더 가야 볼수있는 World’s End는 좀 더 탁트였고, 아래가 더 까마득하다. 저멀리 멋진 운무도 보인다. 힘든 등산을 하지 않고 꼭대기에 오른 기분이다. 개이득!
절벽에 호기롭게 앉아 사진을 찍어본다. 하지만, 찍힌 사진엔 겁먹어 움츠러든채 애써 웃고 있다.
세상의 끝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다시 걷는다. 해가 뜨거워진 길을 한두시간을 걸어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Baker’s fall이 기다리고 있다.
살짝 차갑고 평화로운 초원에서 시작해 해가 서서히 오르며 고조되더니, 갑자기 탁트인 절벽이 연달아 놀라움을 안기고, 태양이 더 열기를 내뿜으며 약간의 오르막에서 절정에 달하다가, 숲속에 숨겨진 폭포에 축적된 열기가 한번에 씻겨내려간다. 격한 체력을 요하지 않아 즐기기 좋다. 마치 한편의 잘 구성된 교향곡을 즐긴 듯 하다.
여행을 다녀보면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부담이 없이 트레킹을 즐길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다. 자연을 오롯이 즐기려면 힘들게 찾아가야 하는 곳이 많고, 쉽게 갈수 있는 곳들은 사람의 손길이 너무 타서 자연에 되려 미안해지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손길이 자연을 지키는데 제대로 쓰여지는 곳도 손에 꼽는다. 그러고 보면 이 호튼플레인즈라는 곳이 생각할수록 귀하다. 스리랑카를 여행지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교향곡 즐기기를 꼭 추천하고 싶다.
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
03 중국 차마고도(2) 호도협트레킹 ‘감칠맛나는 길, 차마고도’
04 스리랑카(1) 스리파다(아담스픽) ‘스리파다, Serendipity’
06 스리랑카(3) 호튼플레인즈 ‘교향곡을 즐기듯 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