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ly on 아스파라거스)
2018년 하반기 시작, 여차저차 목숨 부지, 그리고 2024년 하반기 스위스 투자자의 조건 없는 투자 결정.
위에 보이는 [결정]과 [실행] 사이에는 '과'와 '한 칸'이 있지만, 이 바닥 [결정]과 [실행] 사이에는 끊임없는 기다림과 갈등, 그러다 가끔은 [결정]만 혼자 남은 채, [실행]이 수반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는 여전히 실행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해, 갈등은 해소 되지 않았고, 고민은 해결을 바라고 있으며, 완벽의 혜자는 아직 창렬하다.
당신은 천사를 믿는가?
나는 나의 에인절을 보았다. 바로 직전순간까지도 나는, 왜 엔젤 투자자angel investor를 엔젤이라 하는지 이해는 커녕, 오히려 그 약탈적 지분 갈취 행위는 악마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이 시기 나는, (클리셰cliche 같지만) 어두운 동굴 속에서, 희망에 의해 사지가 찢기는 고문을 당하는 중이었다. 해가 떠도 이 세상은 어둡고, 이 길이 빛을 향해 가는 길인지 막장을 향해 가는 길인지, 다리를 절며 제자리를 맴맴 돌고 있는 것인지, 당췌 알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잔인한 희망은 절대 막연해 보이지 않는다. 바로 눈 앞에 있는 것만 같아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마치 노름꾼의 본전 생각과도 같다.
그때 나의 천사께서 내가 아는 분의 아시는 분의 소개를 통해 빛과 함께 강림하시었다. 그리고는 나를 어둠의 동굴 속에서 끄집어 내어, 다시 정글 속으로 내동댕이 쳐주셨다.
희망의 날선 고문을 버틴 자, 끝내 희망과 조우할지어다.
나는 또 한 해를 버텨내었고, 한 살 더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바닥의 바이블 중 하나, 에릭 리스Eric Ries의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에는 'Build-Measure-Learn' 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 세 가지의 반복iteration을 통해 스타트업은 제품을 개선해 나가고, 필요에 의해 피봇pivot을 하기도 한다.
사실 이 거 안 하는 기업이 어디 있겠나. 다만, 내가 이해한 이 반복의 핵심은, 완벽한 제품/서비스 내놓을 생각말고 일단 내놓은 후 시장 반응 보고 빨리 수정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의 차이라면, 시장에 완전히 내어놓는 대신에 PoC(Proof of Concept)라는 제도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검증을 목적으로 하는, 고객과의 베타beta 테스트 정도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스타트업에게 고객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나에게 투자를 해줄 고객이고,
다른 하나는 내 제품/서비스를 구매해줄 고객이다.
써놓고 보니 참 당연한 말이다. 어쨌든, 나의 경우, 차갑게 돌아섰던 자본시장과는 다르게, 내 제품을 구매해 줄 잠재고객들로부터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한 관심을 받아오고 있다.
2019년 하반기, 프랑스의 어떤 패키징 전문기업을 시작으로, 나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어 볼 해외 기업들(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정말 누구나 다 아는)과 수 차례 PoC를 진행해 왔고, 제품의 불완전함 역시 수 차례 확인했다. 하지만 PoC 라는 것의 목적이 원래 그런 것이므로 괜찮았다. 처음에는...어느 정도까지는... 정말 괜찮았다.
주로 유럽의 대기업들과 진행을 했는데, 국내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기준들을 충족 시켜야만 했다. 이미 당시에도 화장품업계에서 10년을 뒹굴었지만 나는 듣도보도 못한 조건들이었다. 단, 내가 몰랐다는 것이지 말이 안되는 기준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맞춰야 내야 했다.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3년이 가고,
4년이 됐다.
결여된 자본, 대유행의 시대를 나는 그렇게 보내야만 했다.
2024년 여름의 시작, 나는 투자를 위해를 위해 나는 한동안 스위스에 머무르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시간이었다.
물론 그 시기에도 내 머릿속 한 부분은 언제나 제품의 해답을 찾고 있었고, 그때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뭔가를 조금 더 어떻게 해보면 될 것만 같았다.
프랑스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와, 꼬박 두 달을 다시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폐관수련에 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해결을 보았다. 현실과 이상의 반영이 적절했다. 조화로웠다.
4년인데, 눈물을 삼키며 버틴 그 시간이 4년인데,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참 허무하다. 허나 어쩌겠나, 실상이 그러한 것을... 그냥 그렇게 얻어걸린 것을...
2025년, 나는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주제별 에피소드와 그것에 대한 제 주관적인 생각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