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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이 차가운 스타트업 바닥에...¹

by 아스파라거스 Mar 28. 2025

이 바닥에 유입되는 경로에는 두 가지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여러 갈래 길 중, 이 바닥으로 향하는 길을 택해 온 경우. 다른 하나는 나처럼 처음부터 이 길로 향하는 길 밖에 없었던 경우.

나는 조직생활부적응자이다. 따분히 앉아, 차분히 위계에 따르며, 고분히 주는 돈을 받아 먹고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당연히 갈 곳은 한 길 밖에 없었다. 내 것을 하는 것이었다.

허나, 한 줄기 물이라 해도 하천이라 불리울 때가 있고, 강이라 불리울 때가 있다. 그것이 이 바닥에선 대충 자영업이냐 스타트업이냐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스타트업을 택했다. 사실 택했다기 보다는 그게 누가 봐도 좋아뵈는 떡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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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판의 구성

아이템의 유/무 × 팀의 유/무 × 자본의 유/무 = 2³

스타트업의 구성 요소를 n가지로 나누고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저 세 가지의 유/무에 의해 결정되는 여덟 가지 조합이다. 마켓, 타이밍, 비즈니스모델, 정부의 지원 뭐… 이런 것들은 그냥 저 세가지 들고서 버티다 보면 생긴다. 이 바닥도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거다.

사실 처음부터 저 셋을 다 가질 필요도 없다. 아이템과 자본이 있으면 팀은 꾸리면 되고, 팀과 자본이 있으면 아이템은 만들면 된다. 팀과 아이템이 있으면 자본을 구하면 된다. 그런데 하나 가지고는 안된다. 최소 둘은 가져야 판이 시작된다.

나는 아이템 있음, 팀 없음, 자본 없음의 조합이라는 개패를 가졌고, 판에 끼기 위해서는 나머지 둘 중 하나를 구해야 했다. 당연히 다음은 자본이었다. 나는 친구도 몇 없다(사연이 많기는 하지만). 다행히 판돈 구하기에는 때와 장소가 좋았다.


2 ● 아이템 획득기

내게는 아이템 하나만 있었다. 아이템도 사실 대학 졸업 후 가장 오래 했던 일들에서 얻어걸린 것 뿐이었다. 물론 얻어걸리기가 길거리에서 뺨맞기 만큼 쉬운 과정만은 아니었다. 이전 10년의 경험을 토대로, 2018년 하반기 부터 시작해서 2019년 말까지 1년여를 야탑에 위치한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폐관수련한 결과로 얻어걸린 것이었다.


2008년 12월, 대학을 졸업을 앞두고 자그마한 화장품 브랜드에 취업하게 되었다. 별안간에 큰 회사였다. 입사 이틀 째, 영업채널 하나를 담당하게 되었다. 아직 졸업장도 미처 수여받지 못한 새내기를 그닥 마이너하지도 않은 영업채널의 담당으로 일임하다니! 역시 나는?이 아니라 역시 그곳은! 아사리 판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입사하고 얼마되지 않아 모두의 관심 속에서, 과장과 내가 서로의 생사여탈의 권리에 서로 관여하겠다며 권리쟁탈전을 벌였지만, 나는 짤리지 않았다. 군대로 치면 나는 폐급이었지만, 그곳에 기수열외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나는 무쌍을 찍었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 머문 20개월여 동안 화장품제조판매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것은 철저히 아사리 판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화장품 업계에 들어서고부터 10년(의 대부분)을 관련한 일들을 하며, 근근히 생존해 갔다. 와중에 나는 일본, 미국, 중국 등의 업계 시장을 경험할 수 있었고, 이것은 분에 넘치는 경험이었다. 하나만 풀자면, 짧았던 20개월 중 6개월을 도쿄에서 일본 콜마와 제품개발을 하며 보냈다. 이건 마치, 신생 팹리스 스타트업이 TSMC의 매우 적극적인 지원하에 제품을 개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는 아이템 획득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3 ● 다음은 자본인줄 알았으나…

2019년 하반기, 나는 보틀리스라 명명한 제품을 앞세워 본격적인 자본 구하기에 나섰다. 많이 원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템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PoC를 위한 약간의 자금이면 되는 시기였다. 상반기를 피치덱을 준비하며 보냈다. 직접 영상을 만들고 자료를 디자인하며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자본시장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름 꽤나 날리는 AC/VC들도 관심을 가졌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조건(밸류와 지분율)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투자자들은 내 생각보다 더 큰 금액을 투자해 일정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기를 원했다. 몇 번의 거절을 이어나갔다. 투자금이 너무 커서 거절, 밸류에이션이 낮아서 거절, 국내 SI는 싫어서 거절, 인간성 문제 있어 보여서 거절… 자본이 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혀 급한 티는 내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기회는 많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서 메일이 오기도 했다. 달라는 자료를 주기 싫어 세 번을 거절한 적도 있었다.


나는 템포를 죽였다. 섣부른 결정으로 후회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2020년 상반기를 노리기로 했고, 하반기 글로벌 판에 뛰어들어 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겨울, Covid-19이 왔다.

잠깐의 꿈이었고, 그 꿈이 너무 달콤해 슬피 울 수 밖에 없었다.


4 ● Covid-19, 자본없는 창업가의 일상.

2020년 초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우리는 유래 없는 질병의 유행과 함께 했다. 모두에게 있어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나 역시도 그랬다.


나는 항상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것이 힘들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유난히도 기묘했던 시간들이다. 분명 그 시간을 살긴 살았으나, 내가 직접 살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이다. 인셉션과 같이 주입당한 기억, 마치 꿈 속처럼 직접적이지 못한 감각들, 지금 막 킥 당한 것 처럼 강렬한 인상은 남아 있지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그런…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그런 줄 알았시옹.  

브런치 글 이미지 2


나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아닌가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글을 쓰는 와중에 깨달았다. 나는 그 시간 내내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매일 술을 마셨다. 어떤 날은 아침 저녁으로 마셨다. 특히 막걸리를 많이 마셨는데, 그건 막걸리가 적당한 도수에 싸고 배부르고 달리 안주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상황에 가장 적합한 주종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쉬지 않고 술을 마셨을까? 고된 삶을 달래기 위해? 가느다란 목숨줄이나마 부지해 보자고? 전혀 아니다. 나는 그저 늘 해왔던 것을 했을 뿐이다. 자본 없이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늘 하던 일을 했다. 4시간 쯤 자면서 혼자 일하고 술 마시고. 난 원래 그렇게 술을 마셔왔던 사람이다.


그저 하던 늘 해오던 일을 마저 하는 것. 이게 생각보다 중요하다. 내 인생의 미덕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늘 그렇게 뭔가를 꾸준히 했다. 지속성이 무언가를 담보하진 않지만, 오래걸려 쌓은 것들은 무너지고 치워지는 데에도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코로나와 함께 했던 그동안을 나는 별달리 새로운 것 없이 그렇게 이전에 해오던 것들을 매일매일 반복하는 하며 보냈다. (술은 오랜 기간 잘못 쌓아진 습관에 불과했다.)


모니터 세 개에 각각의 일들을 항상 띄워 놓았다. 제품설계에 관한 것, 피치덱에 관한 것, 그리고 메일. 나는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일, 저 일을 왔다갔다 반복하며 처리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냥 그것을 화면이건 머릿속이건 어딘가에 띄워놓고 쳐다보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답이 얻어걸리기를 기다린다. 물론 이렇게 해서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잊지 않고 꾸준히 한번씩 쳐다만 봐도 답이 나오기도 한다.


어쨌든, 아무튼, 나는 그렇게 그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보면 시간을 번 것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제품 개선이라는 문제에는 답을 구하지 못했다.


5 ● 여기는 프랑스, 여전히 가진 건 아이템 뿐

2022년 상반기, 대유행의 시대가 어느정도 정리 되면서, 이 바닥도 활성화 되어갔다. 특히 글로벌 사업들이 그랬다. 단, 자본시장만큼은 예외였다. 해빙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쪽 업계에 있는 친구의 말은 이랬다, 대유행의 시대에 줄줄이 자빠지는 스타트업들을 봐왔고, 이번 기회에 자생력 없는 스타트업들을 걸러내고자 한다고. 그리고 기진맥진해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스타트업들을 싼 값에 사들이려 한다고. 앞선 시대의 잘못된 투자관행도 기여했다고는 했다.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수긍가는 맥락이었다.


(2019년 말, 나는 LinkedIn(그 위대함에 대해서는 따로 존중을 표현하겠다)을 통해 프랑스에 있는 유명 화장품 패키징 기업과 연결 되었다. 내게 관심이 많았고, 적극적인 도입을 의지를 표명했다. 이어서 2019년 프랑스 STATION F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몇 달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땐 STATION F가 무엇인지, Incubateur HEC Paris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프랑스는 내게 기회의 땅이었다. 두드리면 열렸으니까. 엌… 그러나 대유행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든 것이 무산되었다.)


2022년 하반기, 다시 프랑스로의 문이 열렸다. 두드리니 또 열렸다. 나랑 이 땅이 나랑 사대가 맞는구나 싶었다. 수중에 남은 돈을 털어 프랑스에, 파리에 한동안 머물러 보기로 했다. 시작이 좋았다. 글로벌 최대 기업이 연락을 해왔다. 내 아이템에 관심이 있다한다. 이것들을 지렛대 삼아, 늘 그랬듯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제품을 개발하면서, 피치덱을 다듬고, 자본과 기회를 찾아 메일을 돌린다. 그리고 술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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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 해는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여전히 가진 건 아이템 뿐이었지만, 1년의 인큐베이팅을 통해 한 가지 큰 깨달음과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피치덱(PitchDeck)! 자본시장으로의 입장권! 내가 알던, 한국의 자본시장이 요구하던 자료는 이곳에서 한~개도, 한~나도 소용 없었다. 내가 가진 아이템으로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피치덱이 필요하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이곳에는 전문가가 넘쳐났다. 각 개인들별로 스타일도 달랐다. 나는 차근차근 줏어 담았고 내게 맞는 것을 골라잡아 다듬었다. 50번이 넘는 그랭이질을 해나갔고, 그렇게 1년이 금방 지나갔다.


나는 성장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멈춰 있었다. 하지만 가장 절실한 것은 나였고, 또 다시 늘 하던 일을 했다.


6 ● 이제는 유럽, 여전히 자본은 없음

2023년 한 해를 열심히 한 결과로 이제 좀 그럴 듯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피치덱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사이, 프랑스에 법인도 설립하였다. 변호사 비용을 아끼려, 시간과 노동을 바쳤다. 괜찮았다. 나는 급할 게 없었다. 주머니는 비어 갔지만, 없는 것에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항상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프랑스 법인의 설립이 완료 되면서, 나는 이제 이중국적의 스타트업이 되었다. 한국과 프랑스에 각각 독립법인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상대적으로 손쉬운 종속관계 법인이 아니라, 독립법인을 선택했을까? 그건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폐쇄성, 보틀리스의 사업분야를 고려한 것이었다.


유럽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동,서,남,북, 중앙 유럽으로 대충 나뉘는데, 각 지역의 자본들이, 이 대충의 범위를 넘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운영하는 사업, 특히 액셀러레이팅의 경우는 유럽 지역 전체에 한하여 지원자격을 주는 편이다.(https://www.f6s.com 에 관련 사업들은 여기에 무쟈게 올라온다. 흡사 K-Startup 사이트와 같다)


즉, 이 판에 끼기 위해서는 유럽에 속한 스타트업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고,

친환경 패키징 관련 펀드/액셀러레이팅/규제는 유럽이 가장 앞서기 때문에,


나는 이중국적의 스타트업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런 배경 덕에 나는,  

서유럽의 프랑스에 안정적으로 소속되어 있으면서,

북유럽의 스웨덴,

발트 3국의 에스토니아(북유럽이지만 한번 더 갈래를 친다),

남유럽의 포트투갈,

독립 생태계인 스위스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2023년 하반기에서 2024년에 걸쳐 경험해 본 각각의 생태계(라고 말하기엔 겉만 살짝 핥핥한 수준이지만…)는 정말 값진 것이었다. 우선 유럽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제한적인 기회도 생겼다. 왜 제한적이냐 하면, 그들의 투자에는 같은 맥락의 각기 다른 조건이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1. 스웨덴, 에스토니아, 포르투갈: 해당 생태계에 신설 법인 설립

2. 프랑스: 플립(flip), 다시말해 한국 법인의 지사화

3. 한국: 프랑스 법인의 지사화


독립법인 전략으로 받을 수 있는 수혜는 여기까지였고, 나의 여러 토끼 동시몰이도 여기까지였다. 나는 하나를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선택지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숨은 옵션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부지원사업’이다. 해당 시점까지 나는 창업진흥원, 한국디자인진흥원,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등의 지원사업에 선발되어 혜택을 누리고 있었고, 앞으로도 굵직한 지원사업들의 혜택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과 2.를 선택하면, 이후 누리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 정부의 지원사업을 놓아야 하는 것이고, 3.을 선택하면 외국 자본의 획득 기회를 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그렇다고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보장되지는 않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고민과 갈등의 시간이었다. 기회를 주면 선택을 하겠는데, 선택을 해야 기회를 주겠다 하니… 그때 또 다른 옵션이 등장했다.


4. 스위스: 조건 없이 한국법인에 투자


이것이 바로 갈등의 해소이고, 고민의 해결이자, 완벽의 혜자였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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