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너무 바쁘네요. 회사에만 나오면 정신이 없습니다.”
예전 한 고객사의 경영진과 이야기 나누던 중, 자주 들었던 말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회의들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회의가 열리고 있는지,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진 나는 대표님의 허락을 얻어 실제 회의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회의에 참관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더욱 인상 깊었던 건, 회의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 매번 가장 많이 이야기하던 대표님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왜 ‘정신이 없다’고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루가 마무리될 즈음,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인원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항상 대표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의견을 듣고 싶은 건지, 의사결정을 하는 건지에 따라 참석자들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혹시 기대하시는 역할이 있으신가요?”
“모든 회의가 정시에 시작하거나 끝나는 경우가 없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결정되지 못한 채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는 회의도 많던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대표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조금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하겠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다음 대화를 기약했고,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내가 던진 질문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인원’, ‘시간’, ‘횟수’ — 단 3가지 관점이었다.
이 단순한 세 가지를 줄이기만 해도, 회의는 훨씬 더 담백하고 유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일터는 어떤가?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 과감히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일이 늘어나고
더 바빠지는 구조에 빠져 있진 않은가?
결국 일은 많아졌고, 투입된 자원도 늘었지만 정작 달라진 건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더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착각에 자주 빠진다. 특히 조직문화나 변화를 다룰 땐, 더 많은 시도와 활동을 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정해진 답이 없고 연관된 요소가 많기에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무언가를 더하지 않으면 뒤처진 것 같은 마음이 우리를 자꾸 '추가'의 유혹으로 이끄는 건 아닐까?
반대로 묻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인가?
이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우리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일들 중 단지 생각 없이 쌓아두기만 한 리스트는 없는가?
진짜 중요한 건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 일 수 있다.
문제는 회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불필요한 회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다. 일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료를 더 만들고, 말을 더 하고, 보고를 자주 한다고 일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조직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채우는 일’에 익숙하다.
시간표를 채우고, 보고서를 채우고, 인력을 채우고, 책임을 채운다.
그러나 진짜 탁월한 조직은 그 반대의 길을 간다. 과감히 비우고, 단순하게 만들고, 본질만 남기려 한다.
일이 많다는 말속엔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백이 숨어 있다.
그 고백을 마주할 수 있어야, 조직도, 일도, 사람도 가벼워질 수 있다.
더하지 않는 용기.
덜어내는 선택.
그것이 바로 ‘좋은 일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