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도 결국 떠났대요.”
한동안 말없이 그 말을 곱씹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잠시 조용해졌지만, 이내 누군가가 “부럽다…”는 말을 꺼냈고, 몇몇은 웃으며 “나도 이직 준비 좀 해야겠다”는 말을 던지기 시작한다.
떠나는 사람에게 축하의 말이 이어지고, 부러운 눈빛이 따라붙는 풍경. 요즘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어쩌다 퇴사가 ‘해방’처럼 느껴지는 분위기가 된 걸까. 한 사람이 떠난다는 건 분명 조직에 중요한 일인데,
왜 이토록 가볍게, 당연한 일처럼 소비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걸까.
“남아 있는 내가… 괜히 바보가 된 것 같아.”
퇴사는 선택, 그런데 왜 위안처럼 여겨질까
퇴사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떠나는 사람을 모두가 ‘축하’하게 되었고, 남아 있는 사람은 조용히 마음속 허탈함을 삼킨다.
“나만 아직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걸까.”
“혹시 나만 너무 오래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하면, 조직의 공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소리 없이 이탈하고, 남은 이들은 점점 말을 줄인다.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을 바라봐야 할 때
잘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아무 말 없이 버텨주고, 여전히 자신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한때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팀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던 그들이 점점 무표정해질 때, 그건 결코 사소한 변화가 아니다.
조직이 놓치고 있는 사인은, 늘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있다.
남는다는 건 무언가를 지켜낸다는 뜻인데
회사를 떠나려면 여러 가지 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아 있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감정 노동’이 따른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래도 이 조직이 좋아서, 혹은 아직 뭔가 해낼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남는 사람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고, 무언가를 말해도 돌아오는 게 없고, 자꾸 ‘너만 너무 예민한 거야’라는 반응만 돌아온다면, 그들의 마음도 결국은 지치게 된다.
남는다는 건,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건 지키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게 된다.
나만 남은 것 같다는 기분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부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이미 당신도 꽤 많이 지쳐 있는 것이다.
‘일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줄어든 것 같고’
‘회의에서 말할수록 내 말만 튕겨져 나가는 기분이고’
‘예전엔 같이 고민하던 사람들인데, 이젠 다들 침묵하고’
그럴수록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다.
“이제 나도 떠나야 할까?”
사람들은 지쳐서 떠나는 게 아니다.
떠나야겠다는 확신이 생기기 전에, 남아야 할 이유가 더는 없다고 느껴질 때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아주 단순한 질문
퇴사율을 낮추기 위한 복지나 분위기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조직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거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왜 머물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유가 여전히 유효한가?”
조직은 종종 떠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해석을 붙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남은 사람의 눈빛이 흐려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는 것이다. 그 눈빛 속엔 분명 어떤 말이 숨어 있다.
남아 있는 사람이 초라해지지 않도록
좋은 조직은, 떠나는 사람을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남아 있는 사람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만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껴지도록
내가 여기에 있는 게 팀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도록
오늘 하루도 내 성장 안에 있다고 느껴지도록
이 세 가지가 지켜진다면,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다면, 지금 이 조직에서 내가 지켜내고 싶은 건 무엇인지, 그걸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볼 시간이다. 그리고 리더라면, 조용히 남아 있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놓인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헤아려야 한다.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조직
바로 그런 곳이,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