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을 보면 규모에 상관없이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은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비전이 담긴 포스터, 슬로건, 일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회사의 근무공간과 복리후생을 어필하기 위한 다양한 홍보영상들을 보면, 겉보기엔 참 멋지고, 다른 회사 사람들 모두가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회사로 보일 것 같다.
하지만 한 번쯤은 묻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장치일 뿐인 걸까?
'보여주기'에 진심인 조직들
언제부터인가 기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와 역할이 중요해지고, 근무하는 환경과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는지가 회사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가면서 기업들은 하나같이 외부에 있는 사람의 반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요즘 MZ는 문화에 반응해요.”
“우리도 있어 보이는 조직으로 보여야 해요. 뭔가 그럴싸한 것! ”
“일만 시켜선 안 되잖아요, 뭔가 더 있어야죠.”
그 결과 사무실은 예쁘게 꾸며지고, 슬로건은 멋지게 걸리고, 타운홀에서는 리더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소통'이라는 이유로 한자리에 모여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좁혀가는 자리인 만큼 '타운홀'은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모이는 것만으로 의미를 갖는 단계'가 지나가면 이제 구성원들의 머릿속에는 많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게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건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활동들이 실제 자신의 일과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저 “좋은 회사처럼 보여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조직 안에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구성원들이 눈치채면서부터 구성원들에게 '조직문화'라는 것은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오게 된다.
컬처비, 문화의 탈을 쓴 선동
예전 TV를 보며, 사이비 종교나 집단에 빠지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엉뚱한 사상에 빠지게 되는 걸까?
흔희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면의 불안감과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삶의 답을 찾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할 때.. 그 틈을 파고드는 '누군가의 그럴듯한 말'과 '아늑한 공간'이 좀처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매료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조직문화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불확실한 비즈니스 상황 속에서의 불안함, 반복되는 답답한 커뮤니케이션 속에서의 조직구조의 허술함, 애매한 역할 구조 속에서 서로 간의 갈등이 점점 쌓여만 가는 순간. '문화라는 이름의 포장으로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잠식시키고, 멋들어진 이미지로 탈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조직을 '사이비'가 아닌 ‘컬처비(Culturebee)’라고 부르고 싶다. 겉으로는 문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구성원을 선동하고 조종하려는 구조이다.
컬처비 조직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문화 활동이 늘어날수록 실무자들의 업무는 더 과중해진다.
자율을 말하면서도 ‘이 문화는 참여해야지’라는 강요가 있다.
문화 활동으로 인해 ‘일의 본질’이 흐려진다.
구성원들이 내부 문제를 지적할수록 “우린 원팀이잖아”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이해해야지" 눌러버린다.
<표. 사이비 종교와 '컬처비 조직의 유사점>
결국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실제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묻지 않은 채,
“이런 것도 안 해주는 회사보단 낫잖아?”라는 말로 포장된다.
그럴싸한 이야기와 포장으로 사람을 묶으려는 문화는 사이비가 빠르게 몰입자를 만드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문화는 사람을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환경이어야 하는데, 일부 조직은 화려한 이미지, 감성적 메시지, ‘우리끼리만 통하는 코드’로 구성원을 묶으려 한다.
그건 결국 ‘내면의 자율성’을 뺏고, ‘외부 자극’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이다. 당장은 활발해 보이지만, 결국은 쉽게 지치고 빠져나가게 되는 속성을 갖게 된다.
‘열정’은 홀림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은 홀려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요즘의 구성원들은 더욱 그렇다. 일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감성적 자극이나 단기적인 환상이 아니라,
자기 일에 대한 주도권
내가 여기서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
나의 가치와 조직의 방향이 이어져 있다는 실감에서 나온다.
멋진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회의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고, 굿즈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의견이 존중받고 실제로 반영되는 경험이다.
문화는 '홀림'이 아니라 '호흡'이다
좋은 조직문화는 사람을 감동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용히 만들어줄 뿐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분위기
실패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은 공간
불필요한 걸 줄이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하되, 각자의 걸음으로 갈 수 있는 여유
이런 것들이 진짜 ‘우리 다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그럴듯한 포장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의 진심이다.
사람을 홀리는 문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 문화는 그 조직을 지속가능한 생태계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
겉모습으로 설득된 사람은, 겉모습이 바뀌면 떠난다.
멋진 포장을 벗겨도 남는 것, 그게 진짜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