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아침부터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한 아이의 사연이 목소리로 소개되었다.
매일 아침 엄마랑 학교 가는 길에 라디오를 들었는데,
이제는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에 가게 되어서 못 들을 것 같다고,
자신이 대학생이 되는 날까지 계속 건강하게 라디오를 해달라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다시 찾아가겠다고.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그 아이는 종종 산책을 하기 위해
남산에 간다고 했는데, 라디오를 진행하시는 분께서도 남산에 자주 가신다면서
언젠간 우연히 만났을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 만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괜히 잠결에 아침밥을 먹다가 눈물이 났다.
아빠는 그런 날 보면서 이런 짓궂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말씀하셨는데,
원래도 특별했던 남산이, 그날 아침 그 아이의 목소리 덕에 더 특별해진 것만 같았다.
건강한 아이가 어느 한 시절의 마무리를 짓는 모습을 보아서였을까,
아니면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명랑하고 티없이 천진난만했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그 아이는 방학이면 다시 그 아저씨의 라디오를 들을 수 있을거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연락하고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시절에 안녕을 고하는 것은 어떤 의식과도 같이 행해진다.
안녕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맞이할 새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이전 페이지들은 한 권으로 묶여 한동안 저기 저 방의 구석을 차지할테다.
더 건강해지고 또 더 성장한 아이는 과거의 자신을 기억할까.
모든 하루,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진 못할지라도
라디오의 아저씨에게 유치원 입학을 이야기했던,
잠시 작별아닌 작별을 한 그 순간은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매일 아저씨의 라디오를 들으며 아침마다 아들을 데려다주신 어머니의 마음,
아들과 이를 하나의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에 공감해서 눈물이 났을 수도 있겠다.
라디오는 아마 이런 따뜻함 때문에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오래오래 존재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은 쓰는 순간은 펑펑 눈이 오다가도
종종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치는 오후이다.
춥고 움츠러드는 순간들에도 햇살과 눈송이가 촘촘이 박혀있는 나날들이
그 아이에게도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