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하이 Oct 16. 2023

어쩌다 카이스트까지 와서 수영을

공부 끝 운동 시작! 수면 아래 나만의 안온한 세상


  새벽 훈련이 끝나고 학식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마주 앉은 선배가 대뜸 물었다. 


너는 어쩌다 카이스트까지 와서
수영을 하고 있냐?


  “저요? (우적우적) 그러게요. (긁적긁적)”

  민낯에 산발을 하고선 계란 프라이를 두 개째 입에 털어 넣고 있는 새내기를 보며 (아마 본인도 그 옛날 이러했을) 선배는 궁금했던 것이다. 얘는 입학하자마자 이 힘든 훈련을 왜 하지? 이렇게 훈련하고 9시 수업 가면 자는 거 다 아는데, 그러다 시험 기간 되면 밤새워 공부하다 라이징선 훈련 가야 할 텐데, 수영 좀 한다고 취직에 1도 도움 될 것도 없는 공대생인데… 

  너에게 수영이란..? 선배의 심오한 물음에 나는 벙쪄버렸다. 오랫동안 ‘수영장이 있는 공대’를 목표로 공부하긴 했었는데 말이야. 그러게. 내가 어쩌다 수영을 좋아하게 됐더라?

  “음, 제가 수영을 하게 된 건 말이죠….”



공부 끝 운동 시작


  중학생 때 미국 하이틴 드라마에 빠졌었다. 특히 몇몇 장면에 홀딱 반해버렸는데 대략 이런 식이다.


S#.1 Florida High School (낮/안)

수요일 오후 3시. 7교시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온다. 왁자지껄한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걸어오는 라라. 파란 캐비닛 문을 열자 쪽지 한 장이 바닥에 떨어진다. “공연 기대할게, 피터” 쪽지를 본 라라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핀다. 주머니에 쪽지를 넣으며 캐비닛에 넣어둔 운동복 가방을 꺼내는 라라. 


S#.2 학교 운동장 (낮/밖)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에 모인 라라와 친구들. 핫레드 치어리딩 팀의 새빨간 유니폼이 바람에 펄럭인다. 팀의 주장을 맡은 라라는 모레 있을 고교 미식축구 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막판 연습을 지휘하느라 분주하다. 대망의 피라미드 쌓기 대열이 맘에 들지 않아 얼굴을 찌푸리는 라라. 화창한 하늘과 푸른 잔디를 배경으로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텀블링하는 학생들.


S#.3 경기장 (밤/밖)

조명이 환하게 켜진 경기장. Florida High School과 Seattle High School의 미식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고교 풋볼 리그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피터와 고교팀 최강 쿼터백 존의 맞대결. 상대팀 수비수가 던진 공을 피터가 인터셉션으로 잡아내고 상대팀 엔드존을 향해 몸을 돌린다. 땀방울 휘날리며 돌진하는 피터와 그런 피터를 숨죽여 바라보는 라라, 이어지는 터치다운과 환호하는 관객들….



  그 시절, 미국의 또래 친구들은 내 로망이었다. 방과 후면 운동부나 악기 연주, 봉사활동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학교 밖으로 향하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상상했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 방과 후에 꼭 운동을 해야지.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와 등산을 다니고 엄마와 배드민턴을 쳤고 친구들과 자전거와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얼음 땡을 하며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뛰어노는 게 제일 좋아! 원 없이 몸을 움직일 때 나는 제일 행복했다. 비록 한국의 고등학생은 그렇게 살기 쉽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 행복을 좇아 살 테야, 나는 막연히 꿈꿨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내가 마주한 현실은 월화수목금금금. 1교시부터 7교시도 아찔한데 방과 후 수업 1,2에 야간자율학습 1,2교시까지 더해져 나는 아침, 오후, 밤의 하늘을 모두 학교에서 맞이했다. 처음 야자를 하던 날 직감했다. “내 청춘은 이대로 책상 앞에서 저무는구나….” 울적했다. 그 미드를 안 봤더라면, 저렇게 필드를 누비는 같은 17세가 사는 세상을 몰랐더라면. 

  펄펄 끓는 피를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돌연 셀프 야자를 선언한다. 


  엄마, 나 혼자 자습할래.
몸을 움직여야 공부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조건 공부가 하기 싫다거나 학교가 싫다는 게 아니었다. 머리만큼이나 몸을 쓰고 싶은 것뿐이었다. 학생이기 전에 한창 몸을 움직이고 혼자될 여유가 필요한 열일곱이었다. 엄마를 설득해 공식적으로 야자를 째겠다는 부모님 동의서를 받아 학교에 제출한다. 방과 후 수업과 야자에 참여하지 않는 사유로 ‘운동을 하고 싶어서’라고 쓰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아 ‘저녁 급식 비용이 부담되어서’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돈이 없어서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담임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는 방과 후, 기쁜 마음으로 혼자 농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슬렁슬렁 도서관엘 다녔다. 도서관 가는 길의 그 짧은 산책마저도 행복해, 짜릿해- 하지만 행복한 자율학습은 오래가지 못했으니. 교감 선생님의 지휘 하에 야간 특별 자습반 같은 게 만들어졌고(대체 ‘특별한 자율 학습반’이 일반 수업과 다른 게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에선 친절하게도 저녁 급식 도우미 자리까지 만들어주며 야자를 시켰다. 뾰족한 수가 없어 교감 선생님을 찾아가 “운동이 하고 싶습니다. 하루 중 잠시나마 저만의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솔직히 얘기했다가 시원하게 등짝을 맞고 자율 아닌 자율학습에 다시 투입된다. 



수면 아래나만의 안온한 세상


  야자 탈출 실패 후 고안해 낸 게 바로 새벽 수영이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빼곡한 학교 스케줄이었지만 새벽 운동은 잠만 조금 줄이면 충분히 가능했다. 아직 어둑한 새벽에 밖에서 무언가를 하기엔 무서웠고 어차피 매일 아침이면 하는 샤워, 씻는 김에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새벽 수영장에 등록했다. 그러니까 내가 본격적으로 수영을 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 그저 살려고, 마음껏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세상만사가 울적해서 시작한 새벽 운동 때문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그때 다른 운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샤워장이 있는 코트에서 새벽 배드민턴도 가능했을 테고 축구나 농구 같은 팀 스포츠도 재밌었을 텐데 말이다. 다른 운동이 아닌 수영을 꾸준히 하게 된 건 단지 새벽과 샤워,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면 내가 수영을 사랑하게 된 이유의 한복판에는 ‘물’이 있다. 일찍이 점쟁이는 말했다. 내 사주에 나무(木)의 기운이 세서 물(水)의 기운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할아버지는 내 이름에 바다(海)를 넣었고 그래서 내가 물과 수영을 좋아한다는 사주 명리학적 해석은 넣어두고, 말하자면 나에게 물은 '자유'와 같다. 


  나는 물속에서 더없이 자유로움을 느낀다.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내 귓가에 맴도는 숨소리와 물소리. 아무 말도 아무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된다. 온 세상이 고요해지고서야 이런저런 생각들이 하릴없이 머릿속을 오고 나고 그것들을 쫓아 내 마음도 두둥실-. 가만히 팔을 움직여 물살을 느낀다. 어디 하나 날 선 곳 없이 내가 움직이는 그대로 몸 구석구석을 감싸 안는 물의 감촉. 고요하고 안온한 나만의 세계. 수면 아래의 세상은 땅 위의 시간이 버거울 때 언제든 훌쩍 뛰어들 수 있는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늘 평화롭고 자유로운 안식처 말이다. 

  그 외에도 처음 물에 뛰어들 때의 차가움, 결국 머리끝까지 홀딱 젖어 버리고야 말았다는 통쾌함, 내가 밀고 또 나를 미는 물의 장난스러움,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가만히 떠있는 것뿐이라는 시시함, 무거운 옷가지들을 덜어낸 몸의 가벼움, 알몸에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짜릿함, 물속에서 제멋대로 춰보는 막춤, 물에 가만히 누워 바라보는 하늘, 잔뜩 불어버린 귀여운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순간, 한바탕 헤엄친 뒤의 기분 좋은 노곤함, 마음껏 땀 흘리고도 땀에 젖을 필요가 없다는 쾌적함, 수영장 문을 나서며 맞이하는 바람의 상쾌함,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다는 안도감 등 내가 수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헤아리자면 손가락에 발가락까지 접어도 모자랄 것 같다. 

  

  처음엔 그저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 찾게 된 수영장이었지만 점점 물과 헤엄을 사랑하게 된 시간들. 그러니까 선배, 제가 이래 봬도 경력 3년 차의 새벽 수영인이란 말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