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Oct 28. 2024

퇴사 앞두고, 인수인계를 잘해주면 나한테 뭐가 좋을까?

이제 그만 퇴사하겠습니다 (3)

퇴사 앞둔 사람들 중에, 나처럼 회사에 빡쳐서 인수인계고 나발이고 안 만들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그 업계를 뜰 사람에게만 추천한다. 보통 퇴사할 때의 마지막 모습만 기억에 남고, 그 모습이 그 업계에 돌고돌아 다음 회사에도 퍼질 수 있으니 그냥 무난하게 인수인계 하고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그리고 사람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니 웬만하면 무난하게 나오는 게 좋다).


그렇다면- 남들이 다 말하는 위의 이유 말고(아름다운 뒷모습^^;) 내가 알려주고 싶은 다른 이유들도 있는데….





내가 입사할 당시, 이미 퇴사한 상태의 전임자가 만들어 놓고 간 <인수인계 파일>은 정말이지 완벽에 가까웠다. 파트별로 폴더까지 다 나눠놓고, PDF 파일로 완벽하게 깔끔 정리!


나는 전임자의 인수인계서를 보고, 그후에 퇴사한 사람들 역시 그런 식으로 깔끔하게 인수인계서를 만들어줄거라 생각(기대)했으나... 천만의 말씀!


제대로 된 인수인계서를 만들어놓고 가지 않는 사람들뿐이었다. 구두로만 인계해주는 사람이 최악이었고...


퇴사 의사를 밝히고 한 달이 남았을 때, 나는 최악의 사람들처럼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인수인계서는 총 50페이지가 넘었고... 중요한 메일들까지 다 파일로 다운받아 압축해놨다.

사실 이렇게 인수인계서를 만든 건, 당연히 그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왜 <나를 위해서> 인수인계를 꼼껌히 작성해야 할까?


1. 주관적 이유: 나는 내 후임자에게 ‘직접’ 인수인계해주는 게 나름의 로망이었다.

초반에는 ‘언제 후임자가 들어오지?ㅎㅎ’라는 바보 같은 설렘을 안고 기다리기도 했다^^ 물론 그러고서 퇴사 일주일 남겨두고도 후임자가 들어오지 않자, ‘제발 나 퇴사하고 후임자 들어와라’는 주술을 걸게 되었지만…


어쨌든 이번에 했으니 이제 두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답답하고 귀찮다. 하지만! 뭐든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 한 번쯤은 경험해봐도 좋다(부디 한 번으로 끝나면 좋겠다…). 특히 나 같은 경험주의자에겐- 내가 안 해본 것에 대해 로망/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어서 남들이 뭐라 하든 무조건 내가 해보고 답을 내리기 때문이다.



2. 객관적 이유(1):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했는지 빠짐없이 알 수 있다.

특히나 인수인계서는 남에게 넘겨주려고(후임자 및 팀원) 작성하는 것이니 가독성과 가시성이 좋게 작성한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말이나 표시로 남겨놓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고서 봐도 얼마나 깔끔하고 잘 이해가 되겠는가?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남기니 추후 이직 시 포트폴리오나 경력기술서를 쓸 때 보기에도 편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다 보면 내가 계속 똑같은 에피소드만 반복해서 쓰기도 한다. 또는,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 싶을 정도로 기억 안나는 것도 있다. 그럴 때 인수인계서 보다 보면 ‘맞아, 이 일도 했지. 이거에 얽힌 에피소드 진짜 많은데…’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새로운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다. 돌려막기 그만!



3. 나의 부족한 점을 알 수 있다.

내가 일을 잘하는 것과, 남에게 일을 잘 가르쳐주는 것은 천지차이다. 모든 일잘러가 일을 잘 가르쳐준다고 할 수 없는 것을 다들 잘 알지 않는가?


인수인계서를 작성할 때는 ‘이 정도면 다 알아듣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정작 구두로 알려주려 하니 설명을 제대로 못한다거나, 회사 고인물들/나만 아는 언어로 신입(후임자)에게 설명해서 못 알아듣는다거나… 그런 경우가 정말 많다.


참고로 일을 잘해도 그걸 제대로 설명 못하면 결국 <나만 아는 것>이 되어 버린다. 아이디어 공유가 어렵다는 뜻이다. 회사 다니다 보니 ’말 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말 뼈저리게 깨닫는다.


비단 보고서 발표 때뿐만이 아니라 회식 자리, 점심 시간, 탕비실 스몰토크 등등 … 말하는 연습은 항상 해야 한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말하기 연습만 하면 역시나 또 도태되기 뻔하니…


이런 특수한 케이스를 활용해서 자신의 약점을 객관화시켜 보자. ‘나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말해야겠다’를 깨닫는다거나, ‘나 이건 좀 잘 말하는데?’를 깨닫는다거나…


참고로 이 특수한 케이스는,

인생에서 ONLY 퇴사할 때 단 한번뿐이다.

이직을 안하는 사람에겐 인생에서 3번도 안 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물론 이런 기회 필요없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그러니 짜증 대신 <좋은 기회> 라고 여기고 기회를 잘 활용해보자.




퇴사를 코앞에 두고...

내 후임이 구해지질 않아 차라리 다행이라 여겼으나(인수인계 파일만 팀에 뿌리고 나가면 되니)!


안타깝게도 퇴사 3일 전에 후임자가 입사해버렸다.

^_^


나는 결국 퇴사 3일 전부터 하루 온종일 인수인계를 했고, 마지막 날까지도 일하다가 퇴사했다^^


퇴사하고 나서 한소리 듣기 싫어서였고,

혹시나 연락 왔을 때 '나는 이미 다 인수인계 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위의 1번에서 말한 인수인계 로망말고도

신규입사자에게 회사 소개하고 주의할 점 알려주기 등등 이런거 다 로망이었다…;;^^


종합해보니- 나는 아무래도 ‘멋진 선배’가 되고 싶었나 보다. 매번 막내였고 앞으로도 당분간 막내일 테니, 선배가 되고싶을 만도- ㅎㅎ

이전 19화 출근했더니 업무 권한이 다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