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여, 너를 안고 내가 운다. 시바,

류근 산문집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토록 비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비에 관해 쓴 시가 거의 없다. 비 오는 날은 그냥 빗속에서 비를 살아버렸으므로 비를 다 탕진한 것이었다. 시에 데려다 쓸 비가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시를 쓰는 사람은 정작으론 사랑을 살아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별에 대해서 시를 쓰는 사람은 정작으론 이별을 살아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인이란 그리하여 모름지기 견디는 사람이다. 비도 견디고,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슬픔도 견디고, 쓸쓸함도 견디고, 죽음도 견디고 견디고 견디어서 마침내 시의 별자리를 남기는 사람이다. 다 살아내지 않고 조금씩 시에게 양보하는 사람이다. 시한테 가서 일러바치는 사람이다......

아침부터 이토록 가상한 생각을 해낸 기념으로 오늘은 작정하고 비에 관한 시를 쓰기로 결심했다. 비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로 아주 표절적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자, 비에 대한 시 한 편,

비여, 너를 안고 내가 운다. 시바,

- 류근 산문집,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해냄, ‘시인이란’, 71쪽




‘삼류 통속 시인’을 자처하는 류근의 산문집이다. 폼은 엄청 잡는데 가식이 없다. 적어도 가식을 벗어던지려는 폼은 숨기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은 으레 시바,로 끝난다. 웃긴데 웃기지만은 않고, 슬픈데 슬프지만은 않다. 계속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삼류를 자처하지만, 누구의 아류처럼 되는 시를 쓰지 않으려고 정말 애를 많이 썼다. 그런 면에서 자긍심이 있는 것. 지금도 그런 자존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일류 시를 못 쓰더라고 삼류 본류의 시를 쓰겠다는 생각이다.”

류근 시인의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을 생각해본다. 위의 글 ‘시인이란’과 나란히 놓아본다. 시인은 정작으론 상처를 살아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처를 견디는 사람, 상처를 다 살아내지 않고 시에게 조금씩 양보하는 것을 잊지 않은 사람, 시한테 가서 일러바치기도 하고 징징거리기도 하고 엄살을 피우기도 하는 사람.


상처 받지 않은(혹은 않는) 사람은 없을진대, 도대체 '상처'란 무엇인가. '부끄러움'만큼이나 검질기고 불친절한 단어다. 이리저리 생각해보다 '마음 속에 저릿하게 남는 흔적' 정도로 추스른다.


없앨 수도 없고 어쩌면 없앨 생각도 없는 이 불편한 흔적들을 씨실 삼아, 속수무책 생활의 결을 날실 삼아, 무명의 천을 짜 나가는 것이 곧 삶일 테지. 간간이 무늬처럼 남는 고통과 슬픔과 기쁨과 희망이 각자의 천에 독특한 문양을 남길 뿐.


견딘다,는 측면에서 우린 시인과 공통의 자세를 취한다. 일러바치러 가는 대상이 시인지 아닌지가 다를 뿐.


숙제하듯 시를 쓸 수야 없지. 노동하듯 쓸 수는 더욱 없는 것이고. 그건 그저 세상에 온 시를 옮겨 적는 일, 그냥 시를 살아내는 일. 숙제하듯 저항을 일삼을 수는 없지. 의무처럼 저항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건 그저 저절로 몸과 마음이 움직여지는 일, 그냥 저항을 살아내는 일.
숙제하듯 죽음을 죽을 수도 없는 거지. 노동하듯 죽을 수는 더욱 없는 것이고. 그건 그저 내가 살아낸 삶 안에 본디 머무는 것, 그저 죽음을 살아내는 일. 숙제하듯 살지도 말고, 의무처럼 죽지도 말고, 노동처럼 연애하지도 말 것. 그냥 그것들 모두를 살아낼 것. 그게 지금 우리가 술 마시면서 결심할 모든 것이다.

- 같은 책, ‘숙제도 의무도 아닌 것들’, 64쪽


대체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확에 대한 근심 없이 몸과 마음 가는 대로 씨를 뿌리는 것, 정도로 추스른다. 숙제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지만, 왠지 숙제 같고 의무 같은 것.


이러나 저러나 결론은 하나.
‘그냥 살아낸다’는 것.

(201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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