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답장
Y에게,
이제야 시간이 되어 생각해 보네요.
'상실의 치유(회복)', 사람마다 다르지만 상실감에서 느끼는 상처는, 상실을 준 상대가 회복시켜 주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상실이란 완전히 끝난 상태이니까요. 자신 앞에 없는 사람에게서 치유받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많이(=진실로) 사랑하지 않았기에 상실감을 준 거고, 사랑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여 또 다른 상대를 만나 떠나버려서 준 상실감이니까요.
과거에 어떠했든 간에, 현재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가 두 사람 관계를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배우자가 단순히 가정을 지키려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해선 안 될 것 같아요. 가정마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시겠죠. 하지만 모든 가정의 본질은 같잖아요. 우리가 매번 했던 얘기이기도 하고요. 가정이 존립하기 위해선 모두에게 적용되는 그 본질적인 부분을 서로 충족시켜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배우자가 속해 있는 가정에 무관심하다는 건 뭘까요? 그건 바로 그 가정에 속해 있는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죠. 사랑하면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자발적이고, 그 상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잖아요.
세속적이다. 속물 같으니라고.
이러한 상황은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일 수 있어요. 그것이 오히려 진실일 수 있어 행복감과 만족감을 줄 수도 있어요.
취미활동은 배우자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죠. 사람마다 선호하는 건 다르고 다른 걸 인정해줘야 하는 거죠.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거절하거나 방해하겠죠.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다 자신이 어떠한지가 더 중요해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상황이 불편해지거나 원활하지 않을 때 타인 핑계를 대거나 타인 책임으로 몰아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실은 본인이 다 해놓고선 말이에요.
어떤 사람의 배우자가 변심했는데,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배우자 마음을 돌리려 하고 그동안 하지 않던 배우자 관리도 해요. 하지만 변심한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죠. 실은 개선하려고 노력하다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거죠. 그 자신도 예전부터 배우자에게 불만이 많았고 벌써부터 배우자를 싫어하고 있었던 걸요. 그들은 어느 기간 동안은 자녀를 구실 삼아 책임감을 운운하며 같은 집에 살았죠. 생활에서 불편한 게 싫고 서류나 집 등을 처리하는 게 귀찮아서 계속 가정을 꾸렸다고 했어요. 서로 끝난 사이인걸 이미 알았지만 실리적인 성격이어서 자신이 직업을 구하여 경제력을 가질 때까지는 그냥 함께 살았대요.
그러다 헤어진 그들, 지금은 두 사람 모두가 행복하다고 말해요. 자녀들도 부모가 매일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롭고 스트레스였는데, 그런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어 학교 수업에 잘 집중하고 도리어 예전보다 더 잘 지낸대요.
이건 사례일 뿐 권장하진 않아요. 겉으론 좋아 보여도 제로섬인지 윈윈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이잖아요. 초기엔 뭐든 좋은 법이기도 하고요. 전 제로섬 게임보다 윈윈게임처럼 눈에 띄게 분명하게 적용된 걸 선호하니까요.
가정은 부부가 중심이에요. 자식은 부부의 결정에서 차후의 문제예요.
인간사에선 해결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잖아요. 자신에게 당당하고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인간은 그런 거니까요. 자신에게 솔직해 보세요. 어떤 인생을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지를요.
여러 질문에 조금 함축적으로 답했네요. 제 표현을 항상 잘 이해하셨기에 이번에도 이렇게 답해요.
*1. 영화 [인턴]에선 부부가 예전 관계를 유지하고 다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정해요.
2. 영화 [Silver Linings Playbook]에선 새로운 상대를 만나 사랑함으로써 치유해요.
1과 2의 차이는 무엇이고, 치유의 정도는 어떠할까요? 다음에 함께 생각해 보아요.
(김동률, “답장”, 그녀가 어떤 결정을 하든 친구로서 그녀를 존중하리라.)
(사진 출처, 밀란 쿤데라, 이재룡,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