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입덧 했던 날을 기억한다. 첫 애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며칠 후, 서면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나오는 길 갑자기 속에서 미슥미슥한 느낌과 함께 온천수 터지듯 무엇이 올라오더니 화장실을 찾아 어디론가 뛰어가는 그 찰나를 못 참고 서면 길바닥에 시원하게 허연 토를 콸콸 해 버렸다. 당황스럽고 민망했지만 '아~ 이런거구나! 티비에서 우엑우엑하며 입을 틀어막고 뛰어가는 장면이 내 인생에도 찾아왔구나! ' 싶었다.
설렘과 뿌듯함.. 그래, 맞어. 나 임신한 여자야!
하지만 생명의 잉태를 알리는 찬가같이 느껴지는 기분은 딱 이주일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아이를 위한다는 기분좋은 인내는 고작 이주가 한계였다.
여러 종류의 입덧이 있다. 먹어야 니글거리는 속이 진정되는 먹덧, 양치만 하면 토하는 양치덧, 소화불량, 속쓰림, 냄새 맡으면 울렁거리는 냄새덧 등등..
내 경우는 토하는 토덧이였다. 평소 흡사 기름 한 병 마시고 일렁이는 배를 탄 것처럼 속이 요동을 치는데 온갖 냄새에 강렬히 반응하며 구토를 일으켰다. 평소 제일 좋아했던 고기와 밀가루 냄새가 역하기 이를 데 없어 고기집 앞만 지나가도 그 자리에서 토했다. 냄새만 구토를 유발하였다면 콧구멍만 틀어막고 다녔을텐데 슬프게도 내 경우는 밥, 고기, 밀가루, 야채, 심지어 물까지 모든 음식들 조차 구토를 일으켰다. 즉 먹으면 토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왜 먹어 싶겠지만 살기위해 먹어야 했고 먹으면 구토를 했다.
임신하면 가끔씩 우엑거리면서 임신을 수줍게 표내고 초기에 몇 번 입덧하다가 뜬금없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이라며 재미있게 부탁하고 남편과 함께 하하호호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꿈같은 나날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아나콩.
나는 매일 양쪽 호주머니에 검은 비닐봉지 2개씩을 들고 다니며 시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적나라한 구토를 했다. 어차피 토할바에 먹지말자 했더니 빈 속이라고 구토를 막아주는건 아니였다. 먹은 것도 없는 데 노란 물이 나올 때까지 토하는 날이면 먹지도 못하고 안먹지도 못하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가 싶어 변기를 붙들고 여러번 울었다.
입덧을 완화해준다는 팔찌를 양 팔에 차고 그래도 덜한 음식이 있다기에 기를 쓰고 신 과일과 냄새 없는 음식을 조금씩 시도해보았지만 먹는 족족 다 토했고 그래서 입덧이 없는 사람들과 먹덧으로 살이 쪄 가는 임산부들을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사람 쳐다보듯 했다.
유일한 희망은 임신 초기가 지나면 끝난다더라, 중기가 지나면 사라진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의 희망이였으나 이것도 결국엔 희망 고문으로 끝나 첫째도 거의 9개월까지 입덧을 했고 둘째는 낳기 전날까지 변기통 붙들고 있었다.
이렇게 입덧을 한 달쯤 하고나니 8킬로가 훌쩍 빠지기 시작했고 임신 만삭에 원래 몸무게와 별반 차이없는 배만 볼록한 임산부가 되었다. 첫째때보다 둘째때는 더 입덧이 심해서 정말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단 하나 '탄산수'밖에 없었다. 못 먹으니 힘이 없고 머리가 핑핑 돌아 길을 몇 걸음 걸어가다가 땅바닥에 주저 앉아 혼자 쉬어 간 적도 여러번, 그런 나를 보고 지나가는 행인이 쓰러진 줄 알고 뛰어오는 일도 몇 번 있었다.
누가 '뭐 좀 먹어볼래요?'하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울컥 나고 먹을 수 있는게 없는데 나도 뭘 먹을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또 죽지 않기 위해, 뱃 속에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였다.
'위암에 걸리면 이럴까? 이리도 위장이 뒤틀리며 구토를 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이러고도 죽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슬프고 우울한 생각만 나를 짓눌렀다.
첫째때는 그래도 내 한 몸이라 수액과 항구역질 주사로 견디며 그저 자면서 입덧의 고통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둘째때는 막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첫째가 있어 괴로워도 마음껏 괴로워 할수도 없는 처지가 참으로 힘들었다. 메슥메슥.. 정말 칼로 도려내어 냇가에 찰방찰방 씻고 싶은 속을 간신히 부여잡고 부엌으로 향했지만 그 즉시 평소에는 맡지도 못했던 음식 냄새가 어찌나 역하게 속을 휘저어 놓던지 ..난 또 화장실로 뛰어가 위를 완전히 다 비울때까지 구토를 한 후 눈물 콧물 침물이 섞인 분비물을 간신히 닦고 첫째 밥을 차리고 또 구토하고 그 짓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시고 입원하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시더니 껌딱지 첫째가 있어 안된다는 내 말에 디클렉틴이라는 입덧약을 처방해 주셨다. 부작용 없는 약이라지만 그래도 '약'이라는 선입견에 아이의 중요 기관이 만들어지는 초기까지는 약을 받아 두고도 못 먹다가 중기부터는 일단 내가 살아야 첫째도 돌보기에 약에 의지했다. 약을 한 알 먹고 나면 채소를 아주 조금 먹을 수 있었고 토하는 횟수가 조금 줄기도 했다.
생명의 신비인가. 모든 먹는 즐거움을 앗아가버리고 토하는 고통 가운데에도 태아는 무엇으로 살과 피를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잘 자라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도 차라리 많이 먹는 것보다는 못먹는 것이 태아에게 더 좋다는 이해하지 못할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셨다.
입덧하면 똑똑한 아이를 낳는다더라. 아이가 건강한 표시라더라 등등의 말도 모두 입덧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 가여운 임산부를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말 같이 들렸던 그 시간을 처절하게 지나고 나니 아이가 나왔다.
그래, 모두가 이런건 아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꽤 많다. 경험하고 나니 경험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입덧하다가 죽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고 베길까 싶을만큼 괴로웠다. 그리고 이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어떻게든 감내하다 아이를 출산 하는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