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본기 다지기 5
때때로 쓴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이 있다. 조용한 밤, 방 안의 불은 모두 끄고 책상 위 스탠드 하나만 켜둔 채, 쓴 문장을 한 줄씩 천천히 읊조린다. 이런 시간은 마치 마음속 악보를 조율하는 시간 같다. 눈으로만 읽었을 땐 괜찮았던 문장이, 소리를 내는 순간 어색하게 튀어나오거나 흐름을 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글에도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문장은 단순히 정보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리듬을 가진 존재로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다가간다는 것을.
글에는‘소리’가 있다. 귀로 듣는 음악처럼, 눈으로 읽는 문장도 리듬을 타며 독자의 감각을 일깨운다. 잔잔한 파도처럼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고, 빠르게 휘몰아쳐 긴장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리듬은 단어의 선택, 문장의 길이, 반복되는 구조, 쉼표의 위치, 그리고 단어 고유의 음색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음악에서 쉼표 하나가 곡의 분위기를 바꾸듯, 문장 속 쉼표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장에 리듬을 실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정답처럼 말하기보다, 감각처럼 나누고 싶다. 리듬은 기술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깝고, 감각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먼저 문장의 길이에 귀 기울여야 한다. 길게 흐르는 문장은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감싸고, 짧은 문장은 똑 부러지는 고백처럼 가슴을 울린다.
예를 들어, “나는 그날 그 사람을 보았다. 먼 곳에서, 아무 말 없이, 아주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으로.”라는 문장은 느린 음악처럼 흘러간다. 문장 사이사이 쉼표가 박자를 나누고, 그 박자는 정서를 깊게 끌어당긴다. 문장은 이처럼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숨 쉴 틈을 주어야 한다.
단어에도 소리가 있다. 같은 뜻이라도 어떤 단어를 고르느냐에 따라 문장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걷다’ 대신 ‘발을 옮기다’를, ‘사라지다’ 대신 ‘천천히 멀어지다’를 쓰는 순간, 문장은 조금 더 조용해지고 가까워진다.
나는 자주, 가장 부드럽고 맑은 단어가 어떤 것인지 골라보며 글을 쓴다. 어떤 단어는 거칠고, 어떤 단어는 물처럼 흐른다. 말의 결을 느끼며 쓰는 일은, 섬세하게 실을 짜는 일과도 닮았다.
반복도 문장에 리듬을 부여한다. 반복은 독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파문은 잔잔하지만 오래간다. “나는 기다렸다.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그 목소리를 다시 듣기를. 그 눈빛을 다시 마주하기를.” 이 문장처럼 반복은 의미를 쌓고, 감정을 고조시키고, 어느 순간 묵직한 리듬이 되어 마음을 울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쉼표다. 쉼표는 문장의 숨이다. 우리는 한 문장 안에서도 숨을 고르며 읽고, 생각하고, 멈춘다. 마치 음악에서 쉬는 박이 곡 전체의 결을 바꾸듯, 문장 속 쉼표 하나가 글의 온도를 바꾼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의 두 문장에서 처럼 쉼표의 위치에 따라 글의 주체가 바뀌기도 한다.
쉼표 하나가 문장을 머뭇거리게 만들고, 그 머뭇거림이 감정을 불러온다. 글은 이렇게, 말로 다 전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문장의 리듬은 결국 마음의 리듬이다. 글을 쓰는 사람의 숨소리, 생각의 속도, 고요한 결심이 문장에 담긴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글을 고치기보다, 스스로의 리듬을 먼저 조율해야 한다.
당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면, 문장에 리듬을 불어넣어 보라. 그렇게 쌓이고 다듬어진 문장은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 마치 아주 오래된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기억 속을 건드리듯, 당신의 문장도 누군가의 마음에 그렇게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