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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규 Feb 17. 2018

공모전 도전기(12),  가장 서울스러운 소리

가장 서울스러운 비주얼과 사운드를 찾아가는 아이디어

대학생 시절에 학교를 갈 때는 반드시 한강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전공 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쯤, 매점에서 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테라스로 향했습니다. 언덕 언저리에 있던 미술관에서는 탁 트인 한강이 보였죠. 한강을 보며 배를 채울 때는 수업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듯 한강은 제게 있어 조금은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한강을 사랑하죠. 높은 빌딩 숲을 이룬 서울에서 하늘이 보이는 트인 공간이자, 치맥이 더 맛있게 느껴지게 하는 공간! 불꽃놀이 페스티벌을 하면 세상 어디보다 아름다운 야경이 되기도 하죠.


여러분들은 한강을 어떻게 느끼시나요?


[그림 01] 한강의 야경


한강은 '큰 물줄기'를 의미하는 '한가람'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국사책에서 한강은 백제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어 주었다고 소개됩니다. 이는 한강 유역이 우수한 농업 생산력을 가졌고, 중국과 교통로가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동강, 금강, 낙동강 등 한반도의 주요 하천과 바다를 연결하기 때문에 중요한 수운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삼국사기에는 온달(溫達)과 도미(都彌) 이야기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수도 한양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습니다. 정도전(鄭道傳)과 이규보(李奎報)는 한강을 조선의 상징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국가적인 제사를 지낼 때 한강은 늘 포함하였죠. 현대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의미하는 '한강의 기적'도 한강이 지닌 상직적 의미를 뜻한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림 02] 조선시대 한양의 성저십리(城底十里)를 그린 '경조오부도'

때로는 비극적인 역사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6.25 전쟁 시절, 북한군이 내려오는 것을 막고자 한강 대교를 폭발시키게 됩니다. 당시 상황의 긴급함을 확인할 수 있죠. 또한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강은 1000년이 넘는 긴 역사 속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한 친숙한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강이 서울을 대표하는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림 03] 무너진 한강대교를 건너오는 피난민들


[그림 04] 무너진 성수대교


이 이야기는 여행으로 방문하게 된 뉴욕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뉴욕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은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를 꼭 방문하라 추천하였습니다. 브루클린 다리에서 보는 풍경이야 말로 뉴욕을 대표하는 경치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림 05]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와 풍경

저는 당시 노래를 들으며 브루클린 다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다리 중반쯤 건넜을 쯤, 아이폰에서 흥미로운 노래 두곡이 나오더군요. Jay-Z & Alicia Keys 의 'Empire State of Mind'와 Norah Jones의 'New York City'였습니다.


노래에서 '뉴욕~뉴욕~'과 '뉴욕 씨리~'를 부르는 부분은 브루클린 다리에서 보이는 경치와 너무 잘 맞았습니다. 마치 브루클린 다리에서 바라보는 뉴욕의 경치를 극적으로 느끼게 해주려고 만들어진 노래 같았죠.

Jay-Z & Alicia Keys - Empire State of Mind
Norah Jones - New York City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당시 제게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노래라는 청각적 요소 하나로 시각적 경험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충격이었죠. 교과서 보던 공감각적 경험을 몸소 체험했다고 하고 싶네요. 여러분들도 이러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뉴욕 브루클린 다리에서의 경험을 한국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아이디어의 시작점 이었습니다.저는 이를 위해 한강만 한 곳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한강은 과거서부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현재는 자전거를 타고 치맥을 하는 등 서울에서 사람들에게 친숙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강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비주얼과 사운드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한강을 주제로 한 노래가 있었을까? 과거 조선시대에는 <한강수타령>과 <한강 시선 뱃노래> 노래가 있었습니다. 한강의 풍경과 삶이 녹아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현대 가요에서는 주로 사랑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한강만의 노래를 찾아보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음악을 작곡하면 어떨까 싶었죠.

[그림 06] 한강 둔치에서 바라본 전경

유명한 작곡가와 크리에이터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작을 탄생시키듯, 저도 직접 한강을 가서 소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두어 시간 다니며 사진을 찍었죠.


그러던 중 [그림 06]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저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한강에 반사되어 빚춰진 건물들의 풍경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계속 보다 보니 반사된 건물들의 풍경이 이어지는 것은 마치 소리의 음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실험을 해봤습니다. 한강 둔치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파노라마로 만들어 건축물과 반사된 풍경을 잘라내어 음파로 만들어본 실험이었죠.


[그림 07] 올림픽 공원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만들어본 한강 풍경의 음파 이미지


[그림 07]처럼 비주얼(visual)에서 음파를 은유적으로 표현이 가능 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청각적, 시각적 경험을 조합한 공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음파 그대로 음악을 만드는 일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도전하기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독립 스튜디오 ‘Studio Holodeck’에서 ‘전산실의 청개구리’의 멤버로 활동하는 친구인 '한치'에게 작곡을 위한 연락을 했습니다. 당시 한치는 JYP엔터테인먼트 리코딩 엔지니어로 당시 일을 했었기 때문에 작곡도 무리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죠.


친구는 음파 그대로 보다는 한강에서 듣기 편한 음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한강의 하루를 기반한 소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6시쯤 퇴근 시간 자동차로 가득한 도로와 지하철이 다니는 소리, 당시 유행하던 음악에서 듣던 악기 소리 등을 조합하여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한강의 옛 이름은 이리 가람과 한강의 소리라는 뜻으로 '아리가람 한강소리'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한강의 처음과 끝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비주얼 소재를 만들기 위해서 파노라마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김포에서 출발해 잠실 입구쯤까지 약 32km의 거리 풍경을 말이죠. 이 프로젝트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그림 08] 프로젝트 로고
세상의 문명은 재미있습니다. 지역과 문화의 특수성에 따라 도시 별 독자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도시에는 많은 역사의 이이 기가 담겨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과거부터 도시를 칭송하고,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래를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죠.

이 이야기는 뉴욕에 처음 놀러 갔던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뉴욕 브루클린 다리에서  Jay-Z의 & Alicia Keys 의 'Empire State of Mind'와 Norah Jones의 'New York City'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며 뉴욕을 바라보았을 때 경험은 뉴욕은 바로 이런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시에서 말하는 공감각적 경험을 느낀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수도 '서울'만의 경험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서울만의 경험이 무엇일까? 외국인 친구들은 회색 아파트가 가득한 도시 같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노래와 흥이 가득한 도시 같다고도 하였죠. 24시간 안전하고 한국사람들의 부지런함이 보이는 야경도 이야기했고요.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자 작곡가인 친구와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강에서 보이는 경치를 음악과 연결 지었습니다. 그렇게 노래를 들으면서 지나가는 한강의 경치를 보고 내가 지나갔던 지역이라는 경험을 일깨워주고자 했습니다. 머리 속에 각인된 경험을 다시 한번 아련하게 꺼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오래가는 디자인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죠.

한강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서울의 시민들을 반겨줍니다. 힘들거나 즐거울 때 방문하게 되는 장소기도 합니다. 이제 오렌지 나무처럼 한결같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드겠습니다.  




외국인 친구들이 서울의 경험을 회색의 건축물이 많은 '회색도시'지만, 24시간 흥이 가득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은 활기찬 도시라고 이야기하였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야기 그대로 회색으로만 구성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도시를 자세 보면, 평소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던 풍경이 보이지 않나요?





[그림 09] 아리가람 한강소리 프로젝트 포스터


이미지를 음악과 조합을 하여 만든 영상은 자전거를 타고 이러한 한강 풍경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비주얼도 복잡할 것 없이 만들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자전거와 한강 그리고 소리만 가지고 승부를 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말이죠.


졸업전시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보여준 프레젠테이션에서 과제를 하기 싫어 미니멀리즘을 표방하지 말라는 교수님의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풍경을 멍하게 쳐다보는 데 있어 무슨 소재를 더 넣을지 몰라 저는 끝까지 쉽게 단순한 디자인을 고집하였습니다. 아래처럼 말이죠.

아리가람 한강소리 프로젝트 결과물


봉준호 감독은 '어떤 순간에도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을 의심하지 말고 걸어라.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좌절감이 수시로 엄습하겠지만, 이미 발을 내디딘 이상 그저 묵묵히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오직 그것만이 답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보기 힘든 영화인 '괴물'을 탄생시켰습니다.


우리가 매번 볼 수 있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크리에이티브를 탄생시킬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지만 같지 않은 경험이란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죠.


[그림 10] 한강의 야경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_알버트 아인슈타인


이처럼 우리는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한 가지 모습밖에 바라볼 수 없을지 모릅니다. 상상을 통해 사물을 해석한다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강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Arigaram Han-gang Sori (2013)

Multiple Owners : Joonki Jung, Junhyuk Jang, Geunhae Kim

Adobe Design Achievement Award Film - Semi fin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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