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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Sep 30. 2024

아름답고 자유로운 가을 섬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산책

   1939년 9월 6일 버지니아는 일기에 “내가 살며 겪은 것 중 이것이 최악이다.”라고 썼다. 3일 전에 수상이 독일과 전쟁을 개시했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 처음 몇 주는 몽크스 하우스에서 보냈으나 10월 중순이 되자 런던의 메클린버그 스퀘어로 갔다. 런던은 낯설고 참을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로드멜에서는 이미 9월부터 등화관제가 시작되고 설탕과 종이, 가솔린도 부족했지만 1940년 3월까지는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버지니아는 지루함과 두려움 속에서 ‘전쟁 없음’을 기다렸지만 히틀러는 다음 공격지로 영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5월이 되자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퇴각하고 벨기에가 항복했다. 버지니아는 긴장과 권태와 두려움으로 거의 마비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영국 내에서는‘향토방위 지원군‘이 편성되었다. 레너드는 가입하려고 열심이었지만 버지니아는 그것들이‘약간 웃긴다’고 생각했다. 여름에는 로드멜의 응급치료 모임에 참석하고 마을회관에서 강연을 하고 여성들의 단체 연극 리허설 같은 ‘전시 노역‘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행기를 만들기 위한 고철수집 지시가 떨어지자 레너드가 알루미늄 냄비를 모두 헌납해서 버지니아가 몹시 화를 낸 일도 있었다. 마을 공동체에 섞여 들어가는 일은 어렵고 짜증 나는 일이긴 했으나 어쨌든 버지니아도 공동체의 일부였다.  


    사람들은 히틀러가 상륙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누가 찾아 오든 그들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들은 게슈타포가 이미 체포 리스트를 작성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리스트에는 울프 부부도 있었다. 버지니아는 작가였고 레너드는 유태인이었으니 나치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핍박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함께 차고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들이마신다는 계획을 세웠다. 레너드는 여분의 휘발유를 사놓았다. 버지니아의 동생 에이드리언은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었는데 나중에 두 사람이 휘발유 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치사량의 모르핀을 구해 주었다. 결국 그것들은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버지니아는 쉬지 않고 글을 읽고 썼다. 프로이트를 읽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양가감정에 대해 생각했고, 전기 [로저 프라이]를 완성했고, 후에 [막간]이 되는 <포인츠 홀>을 다시 시작했다. 몇 편의 단편소설도 썼다. 출간의 긴장이 전쟁의 압박감과 겹쳐졌다. 8월 16일에 정원에 있을 때 독일 비행기들이 낮게 날면서 사방에 폭탄들을 떨어뜨렸다. 전쟁이 집 안마당에까지 들이닥쳤다.


    가을이 오자 런던의 집과 몽크스 하우스를 오가는 생활은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런던대공습 때문이었다. 1940년 9월 8일 그들의 런던 집인 매클린버그 스퀘어에 공습이 있었다. 10월 16일에는 호가스 출판사가 들어있던 테비스톡 스퀘어가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잡석과 깨진 유리와 도자기 파편들 사이에서 버지니아는 자신의 일기 스물네 권을 찾아냈다. 버지니아와 레너드는 쓸만한 가구들과 남아있는 책들, 편지들을 로드멜로 옮겼다. 마을 위쪽의 농장에 방 세 개와 창고를 빌렸지만 모두 보관할 수가 없어서 그중 절반은 몽크스 하우스로 옮겨야 했다. 레너드는 넓은 아래층 거실에 “우리가 런던에서 지녔던 수천 권의 책들이 탁자, 의자, 그리고 마루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먼지 끼고 걷잡을 수 없이 뒤죽박죽된 더미를 이루며 쌓여” 있었다. 집 두 채가 폭격당한 후 버지니아의 삶은 시골에 고정되었다. 그녀는 삶의 반경이 축소된 걸 좋아하면서도 답답해했다. 더 이상 마을의 삶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할 수 없었다. 전쟁을 치르는 공동체의 느낌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1940년 가을은 특별히 더욱 아름다웠다. 11월 2일에 강의 제방에서 폭탄이 터져 제방이 무너져 내렸다. 우즈 계곡 전체가 물에 잠겼다. 늪지와 초원도 마찬가지였다. 놀랄 만큼 아름답게 보였던 홍수에서 느꼈던 즐거움은 이전에도 버지니아가 시골 풍경에서 얻곤 했던 위안이었다. 그녀는 강을 따라 긴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지팡이를 들고 홀로 또는 개 샐리를 데리고 출발하는 모습을 보는데 익숙해졌다. 버지니아는 30년 동안 보아온 이 마을의 아름다움에 새삼 감동했다. “언덕과 들판, 눈을 뗄 수가 없다. 시월이 피어나고 있다. 갈색 쟁기. 늪지의 쇠락과 생기.” 평범한 시골생활도 나름대로 즐거웠다. 사과 따기, 벌통에서 꿀 뜨기, 자전거 타기, 버터 만들기, 글쓰기와 산책, 차와 독서, 사탕들, 침대.” 등 전쟁의 위협 바로 아래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시골의 감정들은 버지니아의 마지막 장편소설 [막간]에 담겼다.


장작은 몇 번의 겨울도 날 수 있을 만큼 사놓았다. 우리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겨울 난로에 격리돼 있다. 이제 방해받을 가능성은 적다. 차도 없다. 휘발유도 없다. 기차는 일정치 않다. 그리고 우리는 이 아름답고 자유로운 가을 섬에 있다. 그러나 나는 단테를 읽겠다. 그리고 영문학 책의 여행에 나설 것이다.                                                                           
                                                                              1940년 10월 12일의 일기


    그녀는 11월에 1897년 스텔라의 죽음과 1904년 레슬리의 죽음 사이의 ‘7 년의 불행한 세월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지만 1월이 되자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 회고록 작업 중 과거의 기억이 여전히 자신을 괴롭힌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우울증이 다시 찾아왔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새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고 전시의 궁핍에 관해 쓰기도 했다. 부족한 것들 (마가린, 설탕, 패스트리, 고기, 우유, 가솔린, 옷)과 느린 우편, 방문객들을 먹이거나 여행하는 어려움, 버터를 만들고, 등화관제를 하고 매일 공습을 기다려야 하는 소소한 일들을 기록했다. 머리를 쉴 필요가 있었다. 몸을 움직이면 머리가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마룻바닥을 걸레로 닦고 책 정리를 하기도 했다. 런던에서 가져온 짐 정리도 하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


 “우리가 굶고 추위에 떠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치품들은 끊겼고 손님 접대는…… 물론 런던의 폭격으로 인해 우리는 여기에 고립되어 있다……늙었다는 느낌으로 인해 이따금씩 내가 전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손이 떨린다. 그 외에는 평상시처럼 숨 쉬며 지낸다.”
                                                                                  1940년 12월 19일 일기


    마지막 겨울은 몽크스 하우스에서 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가 낮게 날아다니고 대포소리가 들려왔다. 추웠으나 연료 부족으로 난방도 할 수 없어서 씻지도 못하고 스타킹을 신고 잠자리에 들어야했다. 추운 겨울이었다. 몇 년 전에 시작된 손 떨림이 악화되었다. 하인이 떠났기에 버지니아는 집안일과 요리를 더 많이 해야 했다. 식량은 부족했고 자연스레 매끼 식사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음식 선물 - 크리스마스에 친구들이 보내준 버터와 크림과 우유 - 에 열광했다. 자전거를 몰고 물건을 사러 가거나 배달 트럭에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졌지만 그녀의 식사량은 점차로 줄었다. 11월 이후부터 로드맵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한 의사 옥테비어는 버지니아가 많이 야위고 손이 고드름처럼 차가운 걸 보고 놀랐다. 불안과 불편이 그녀를 괴롭혔다. 점점 더 고립감을 느꼈다. 가솔린이 부족해 바네사만을 이따금 만날 수 있을 뿐 에설과 비타는 거의 찾아가지 못했다. 2월 25일에 [막간]의 최종본을 레너드에게 건네지만 버지니아는 이 작품이 명백한 실패작이라고 여기고 출간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3월 중순에 로드멜 인근에 소이탄이 더 많이 떨어졌다. 18일에는 빗속에 산책을 나가서 물을 뚝뚝 흘리며 흠뻑 젖은 채 떨면서 돌아왔다. 레너드가 놀라 물었더니 그녀는 미끄러져서 도랑에 빠졌다고 했다. 바로 그날이 버지니아가 레너드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쓰기 시작한 날이었다. 버지니아의 일기는 3월 24일에 끝나고 3월 28일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버지니아가 우즈강으로 걸어들어간 후에 레너드는 200통이 넘는 편지를 받았다. 레너드는 편지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이렇게 썼다.

V가 오두막에서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그녀를 찾아 그쪽을 바라본다. 그녀가 익사한 줄 알면서도, 행여 문으로 들어올까 하여 그녀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것이 마지막 쪽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넘긴다. 사람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에는 한계가 없구나.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장편소설 [막간]은 그해 7월 17일에 최종 타이핑 원고대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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