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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Oct 12.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28화- 나는 억울하다)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전장현(1화 감은수 편, 감은수의 남편)


  네? 카메라 켜진 거 아니에요? 음성 녹음만 한다고요? 아 네. 억울하죠. 전국구 가부장남에 염치없고 적반하장 캐릭터로 그려졌는데, 저도 할 말이 많습니다.  


  은수 똑똑하고 섬세해요. 소설 쓴다며 출근 전에 모니터 앞에서 토닥토닥 키보드 소리 내고 있는 거 보면 응원해주고 싶고 옆에 가서 어깨라도 주물러주고 싶고 아침밥이라도 내가 차려야 은수가 글 쓸 시간이 생길 것 같아 저도 일찍 일어나려고 애쓰고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은수처럼 생산적인 행동만 하나요. 비생산적이고 쓸데없는 짓도 해야 숨을 쉬고 살죠. 아침 일찍 일어나니까 은수가 책을 좀 읽으라며 닦달을 하는데, 저는 웹툰에 손이 자꾸 갑니다. 소파에 드러누워 웹툰을 보고 있으면 은수가 저를 얼마나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본다고요. 그냥 늘어지게 자다가 알람이 울리면 '5분만 더'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30분 더 자다가 데드라인에 일어나서 헐레벌떡 준비하고 출근하는 시작을 선택할 걸. 괜히 일찍 일어났다 싶다니까요.  


  미미가 잠을 잘 못 자던 시기에 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은수가 체력이 약해요. 출산하고 나서 의사가 뭐라 그랬다더라? 아! 기억나요! 개복한 부위가 아물지 않았을 때, 영양이 부족한 가난한 지역의 산모한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은수는 입덧이 심해서 임신 기간 동안 잘 못 먹어서 그럴 거라고 말하는데 제가 볼 땐 어렸을 때부터 잘 안 먹어서 그래요. 은수 입이 짧고 먹는 것도 적어요. 결혼 전에는 청순하고 가녀린 게 좋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비실비실했어요. 체력이 약한데 아이 낳고 키우려니 체력이 달려서 짜증이 쉽게 났을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이거 갔다 줘, 저거 갖다 줘하면서 입으로 육아를 많이 시켰어요. 짜증 섞인 말투로요. 제가요.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시키면 또 잘합니다. 군소리 한 번 안 하고 감은수 아바타처럼 움직였는데, 은수는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합니다.


  불통의 아이콘이라는 불명예에 대해서 저도 깊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친하다는 친구 녀석이 탄핵당한 대통령을 보며 제 생각이 났다고 말했을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제가 그런 놈입니다. 단순하고 눈치가 없어요. 이런 면을 장점으로 볼 수는 없나요? 단순하니까 꼬인 구석이 없어요. 다루기도 쉬워요. 은수한테 정우가 한 말을 들려주니 막 깔깔 웃으면서 뒤로 넘어가더라고요. 그렇게 웃긴 일이에요? 막 속이 후련하다면서. 역시 친구들도 다 알고 있었구나. 이러는데 순간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요. 한 번은 일 때문에 제 사업장이 있는 동네에서 사업하는 분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회의에 참여한 분이 저보고 '전체주의'라고 하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모르고 사람들이 웃기에 저도 따라 웃었어요. 집에 와서 은수한테 물어보니 '히틀러 몰라? 전체를 위해 개인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는, 전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라고 말했어요. 제가 좀 일방통행하는 면이 있긴 한가 봐요. 이 점은 반성합니다.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은수가 말하는 것처럼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라고 전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하나(17화 서가람 편, 서가람의 아내)


  성토장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을 보고 놀랐어요. 내가 이 정도로 무개념이었나? 라는 생각에 성찰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도 남편 잘 만났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이야기는 양쪽을 다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지 알고 있었기에 결혼을 안 하려고 했어요. 가람 오빠를 사랑했기 때문에 저 때문에 평생 서운할까 봐 걱정됐어요. 친한 친구들도 '너 같은 스타일이 골드미스가 되어야 하는데, 왜 남친은 내가 없냐.'라며 억울해했어요. 오빠가 제게 결혼하자고 조를 때마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계속 얘기했어요. 착한 가람 오빠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지만 저의 모든 걸(오빠는,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라는 표현까지 했습니다) 감수하겠다고 자처한 건 오빠였습니다. 자기 옆에 숨 쉬며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는데... 미치겠더라고요. 저도 오빠 옆에 있고 싶은데 구속되기는 싫고.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오빠한테 다른 사람 만날 기회도 줬어요. 저는 그동안 연애 안 했냐고요? 네. 소개팅도 안 했어요. 여행 다니고 요가 배우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어요. 1년이 지났는데도 오빠가 다른 사람을 안 만나고 절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떤가요? 모든 운명은 서가람이 스스로 선택한 거 아닌가요? 제 뜻대로 할 수 있다면 저는 결혼을 안 하든가, 한다면 마흔에 하고 싶었어요. 오빠 생각해서 많이 앞당긴 거예요. 아기도 안 낳으려다가 낳았으니 잘된 일 아닌가요? 육아는 당연히 함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5:5 비율로 육아하면 여자가 손해예요. 여자는 아이 임신했을 때 고생 많이 하고, 낳고 나면 몸이 확 상하잖아요. 그러니까 출산 후 육아는 남자가 더 많이 해야 공평해요. 오빠가 허리, 손목이 아프고 메니에르 병까지 생긴 건 유감이에요. 그런데 저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출산하고 아픈 곳이 많아요. 출산한 여성 분들 얘기해 보세요.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라는 분 계신가요?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저를 너무 무개념으로 몰아가니 얘기할게요. 저, 치질 수술했습니다. 저 큰 볼일 2~3분이면 끝나는 사람인데 아기 낳으며 손상이 되어서...  그리고 방광염 걸려 보셨어요? 출산 후 처음 방광염에 걸렸는데,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그게 자꾸 재발해요. 방광염 한 번 걸려보신 분들은 알 거예요. 말 못 할 고통이에요. 밤에 잠도 못 자고요.  

  머리카락은 또 얼마나 많이 빠졌다고요. 복직할 때 앞머리 쪽이 휑해서 스타일링하기 어려웠어요. 헤어디자이너 분 솜씨가 좋아서 잘 커버해 주셨는데, 빈틈이 보이는 허전한 머리카락을 보며 마음 한 구석이 휑해졌답니다. 손목이요? 그거 매일 아픈 거 아닌가요? 저도 아대 끼고 아픈 티 좀 팍팍 낼 걸 그랬어요.


  시부모님 오신 날은 정말이지 억울합니다. 저 평소에 가람 오빠보다 두 시간 일찍 일어나요. 일어나서 오빠가 아침, 점심 때 먹을 음식 하나는 해 놓는 편인데요. 맛이 없는지 오빠가 안 먹어요. 레토로트 음식만 데워 먹고요. 전날 직장에서 일을 많이 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좀 늦잠을 잤어요. 피로가 회복되어야 주말에 아이를 잘 돌볼 테니까요. 하필 그때 시부모님이 오시다니요. 오신다는 말을 미리 안 해준 서가람이 잘못한 거 아닌가요?


  결정적인 한 마디 하겠습니다. 저희 가정은 제가 빨리 복직하고 오빠가 휴직을 최대한 오래 하는 게 맞습니다. 제 월급이 오빠 월급보다 두 배 많습니다. 남자냐 여자냐 상관없이 둘 중 한 명이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면 월급이 적은 사람이 집에 머무는 게 맞지 않나요?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마이크를 다른 분께 넘기겠습니다.  


 


 








장원영(23화 신휘 편, 신휘의 아내)


  앞 분 말씀 들으며 저만 억울한 게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저 술 좋아합니다. 정신 차리고 집에 잘 찾아올 수 있던 사람을, 정신줄 놓고 술 마시게 만든 장본인이 신휘입니다. 시킨 적도 없는데 대학 시절 내내 제가 술을 마칠 때마다 술집 근처에 와서 대기를 했어요. 매번 그러니까 같이 술 마시는 사람들이 근처에 제 남친이 있다는 거 모르지 않았겠죠? 몇 번은 들어와서 같이 놀자고 권하기도 했는데, 술자리 싫다고 딱 잘라서 제가 꽤 민망했어요. 휘 오빠를 좀 스토커처럼 보는 시선도 있었고요. 아무튼 그 분위기와 시선에 대해 한 번도 오빠한테 말한 적 없어요. 오빠 마음 다치지 않게 배려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오빠가 절 기다렸다가 데려다 줄 걸 아니까 술 마실 때 정신줄을 붙잡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습관이 쌓여 오늘날에 이르렀어요. 오빠가 만든 습관이니 자업자득입니다.


  제가 술 마시는 걸 오빠가 그렇게 싫어하진 않을걸요? 오빠가 언급한 것 같은데. 저 술 마시면 애교가 철철 이래요. 가끔은 오빠한테 애교 발산하려고 술 마실 때도 있어요. 왜 그런지 맨 정신에는 애교가 안 나와요. 술 마시고 알딸딸한 상태에 애교 부리면 오빠가 너무 좋아해요. 저도 나름 노력하는 게 있다는 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서율이 낳고부터는 예전처럼 술 못 먹어요. 한 달에 한 번만 눈 감아주면 가족 모두가 평안해요. 저 잔소리 진짜 안 하고요. (이건 제 친구들도, 오빠도 인정했어요.) 건강하고 오래 술 즐기려고 운동도 식단관리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남들 하나씩 다 가지고 있는 취미생활 하나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배우자가 한 달에 한 번 취미생활하는 것 정도는 이해해 주시잖아요.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독자분들께 균형 있는 시선을 드리기 위해 밝힙니다. 휘 오빠는 가정적이고 따뜻하고 상대방을 섬세하게 잘 챙기는 스타일이라 남편감으로 참 좋아요.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서 휘 오빠 별명이 뭔지 아세요? 노잼입니다. 노잼휘. 오빠의 밋밋한 삶에 제가 없다면 숨 막히게 지루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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