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의 말은 단순해요

유희충동3_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_ 조던 스콧 글_책읽는곰

by Maria 윤집궐중


13살의 폭발

“제 말은 단순해요. 저는 엄마나 오빠처럼 복잡하게 말하지 않아요.”


아이가 이렇게 말하며 울부짖었다. 격정의 순간이 지나가고 울음을 그친 아이는, 별생각 없이 한 말에 엄마가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힘들다고,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조목조목 말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나는 거라고 말하다가 다시 울먹였다. 아이의 격렬한 반응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귀엽기도 했지만, 내 마음은 ‘엄마나 오빠처럼’에 얼어붙었다.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오빠를 소환하여 엄마와 함께 자신의 맞은편에 위치시킨 아이의 말에서 그동안 아이가 느꼈을 소외감과 부러움, 애씀이 한순간에 감지되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귀에는 큰아이의 말이 더 잘 들렸다. 큰아이의 말은 듣자마자 지금 어떤 감정인지, 왜 그런지, 어떻게 달래줘야 하는지 알 수 있었던 반면, 작은 아이의 말과 행동과 감정은 수수께끼처럼 다가오곤 했다. 수수께끼를 풀고 나면 그 엉뚱함과 기발함이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되지 않았던 많은 순간 속에서 아이의 말은 나에게 읽히지 못하고 흘러가 버렸다. 말이나 글로 섬세하게 표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마음이 단순하거나 희미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강렬해서 마음은 뒤엉킨 실뭉치가 되기도 한다. 어느 가닥을 잡아당겨야 풀려나올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잡아당길수록 풀리기는커녕 더 꼬여버리는 실뭉치 같은 마음은 말이나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종종 실패한다.


언어에 민감한 큰아이와 수에 민감한 작은아이, 비유적인 표현을 즐기는 큰아이와 사실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작은아이, 생략과 함축을 재미있어하는 큰아이와 명확한 표현을 선호하는 작은아이, ‘그렇게 간단하게 말해 버리면 의미가 달라지잖아’라고 말하는 큰아이와 ‘결국은 이 말인데 복잡하게 말하니 헷갈리기만 하잖아’라고 말하는 작은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아이를 다르게 대했던 것 같다. 나와 기질이 비슷한 아이에게는 ‘감각’으로,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이해’로 말이다.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재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아이는 이미 외로웠을 것이다. 게다가 감각적 수용과 달리 ‘이해’에는 일정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만큼, 아이는 아마도 이해받은 순간보다 그렇지 못한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13살 아이가 폭발했다.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이 글을 쓰고 시드니 스미스가 그림을 그린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글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말을 더듬었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서’ 발표해야 했던 날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돌멩이처럼 조용한 아이는 소리 없이 아침밥을 먹고 말없이 학교 갈 준비를 한다. 학교에서는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맨 뒷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아이가 발표할 차례이다. 아이의 입에서는 소나무가 가지가 튀어나오고, 목구멍 안쪽에서는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울고, 입을 열면 달빛이 스며 나오지만, 친구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친구들은 아이가 저희들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만 귀를 기울이고, 아이의 얼굴이 얼마나 이상해지는지만 본다. 아이의 입은 점점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는 강가로 향한다. 아이와 아빠는 알록달록한 바위와 물벌레들을 살펴보면서 강을 따라 걷는다.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발표 시간이 자꾸 떠오르면서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슬퍼하는 아이를 아빠가 가까이 끌어당긴다. 그리고 강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빠의 말을 듣고 아이는 강물을 바라본다. 강물은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치며 흘러가고 있다. 한참 동안 강물을 지켜보던 아이는 가만히 눈을 감고, 아이의 눈썹과 속눈썹은 순한 곡선을 만들어 낸다. 두 눈을 감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긴 아이의 귓바퀴와 어깨 위로 아빠의 말이 빛이 되어 닿은 듯 햇살이 환하다. 그렇게 아이는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따라 강물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강물처럼 말하는 것은 어떻게 말하는 것일까?



강물의 물살은 강의 폭이나 깊이, 강바닥의 경사도, 유수량, 풍향과 풍속에 영향을 받는다. 강물은 흘러가는 동안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기도 하고 자갈돌과 모래를 쓸어 안기도 하며, 땅을 깎아내기도 하고 모래를 쌓아놓기도 한다. 다른 강물과 합쳐지기도 한다. 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일들을 강물도 겪는다.


소나무의 ‘스-.’를, 까마귀의 ‘끄-.’를, 달의 ‘드-.’를 웅얼거리는 아이 또한 하나의 강물이다. 아이는, 자신의 혀와 목구멍과 입술로 자신을 둘러싼 낱말들의 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비록 그 소리들이 혀와 뒤엉켜버리고,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고, 입술을 지워버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분명 아이를 둘러싼 세계의 소리이고, 아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소리의 세계이다. 아이의 언어는 매끄러운 관 속에 고여 있다가 밸브가 열리면 쏟아져 내리는 수돗물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이다. (이 아이만 그럴까?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우리는 종종 ‘말더듬이’가 된다. 그때 우리가 내뱉는 말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치며.)



아이의 얼굴이 두 페이지 가득 클로즈 업 되어 있는 책장을 양쪽으로 열면 화면 가득히 강물이 펼쳐진다. 네 페이지에 걸쳐 그려진 푸른 강물은, 갑작스레 쏟아진 햇빛을 무수히 반사시키며 환하게 일렁인다. 이 윤슬 속에 몸을 담그고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살짝 벌어진 팔과 수면에 닿아 있을 것 같은 손바닥에서 조금은 차가운 물의 온도가 가늠되고, 허리께에 부드럽게 일렁이는 물결에서 아이가 걸어 들어가는 속도가 빠르지 않음이 짐작되지만, 아이의 몸놀림은 분명 강물에 다가가는 몸짓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페이지에서 아이는 물에 몸을 싣고 팔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이의 몸놀림을 따라 물결이 둥글게 밀려나며 포말이 인다. 이제 아이는 강물과 하나가 되어 헤엄을 치고 있다. 눈은 감기고 입은 벌어져 있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표정이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아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서’ 말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위축되지 않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인 ’그 강’에 대해서 강물처럼 이야기한다. 내 마음의 물살이 만들어 내는 흐름을 따라 당당하게 흘러간다. 아이의 마음은 이제 ‘더듬거리는 내 얼굴’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향해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여기에 당도한 그 아이는, 이 그림책으로 다시 말하고 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고.




그림으로 말해요

강물처럼 들려오는 이 이야기는,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을 만나 울림이 증폭된다. 이 그림책은 청색과 녹색이 여러 단계의 명도와 채도로 표현되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림책 곳곳에 내려앉은 빛은, 주인공의 마음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눈부시게 보여준다.


당당하게 흘러가는 청록색 강물 위로 빛을 담은 물결이 흐르고 그 한가운데 아이가 서 있는 표지 그림은, 본문에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강물의 흐름을 표현하는 붓 자국은 꽤 빠른 물살을 표현하고 있고 아이의 정수리와 어깨 위에는 빛이 한가득 내려앉아 있다. 이 그림은 그림책 속 클라이맥스 장면을 앞에서 본 모습일까, 아니면 아이의 마음속에 간직된 ‘그 순간’을 그린 것일까?


면지에 두 페이지 가득 꽉 채워 그려진 물결은, 주인공이 자신을 바라보던 친구들의 눈과 입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할 때 등장했던 그림이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히는’ 바로 그 물결이다. 조금씩 다른 물감이 서로 섞이며 만들어 내는 무늬나 일어나고 잦아드는 물결의 모습, 거품을 표현하기 두텁게 칠한 흰 물감이 마르면서 갈라진 흔적들이 아이의 마음 같다. ‘자연의 움직임 속에도 내가 더듬거리면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작가의 말이 들려온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문장은 표지에 한 번, 면지와 속표지 사이에 다시 한번, 속지에 또 한 번, 모두 세 번 제목으로 등장한다. 강물에서의 경험이 독백을 거쳐 도화지에 글과 그림으로 그려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림책 속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가져온 삐뚤빼뚤한 글씨체의 이 문장은, 청록색 표지에서는 하얀색으로, 하얀 바탕에서는 초록빛 감도는 회색으로, 연한 카키색 톤의 속표지에서는 검은색으로 쓰여 있다. 크레파스로 쓴 듯한 이 글씨는 음절 하나하나를 공들여 발음하는 아이의 목소리 같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 장면은 6개의 분할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할 화면 사이로 ‘눈을 떠요./ 낱말들의 소리가 들려요./ 아침마다/ 나를 둘러싸는 소리가 들려요./라는 문장이 찍혀 있어 10개의 분할로 보이는 이 장면은 ‘말 더듬’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와 같은 화면 구성은 아이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강물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등장한다. 처음과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두 번의 분할 화면이 중첩되면서 ‘말 더듬’은 ‘강물처럼 하는 말’로 변형된다.


선명하게 그려진 장면과 희미하게 그려진 장면의 잦은 교차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시선 처리만으로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해낸다거나, 친구들의 시선이 집중될 때 그려진 교실 풍경이 그러하다. 수채화에 물을 쏟은 듯 지저분하게 번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교실 모습은 당황한 아이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장에는 움츠러든 아이의 내면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눈을 크게 뜬 아이의 얼굴 위로 소나무 가지와 까마귀와 달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발화되어 전달되지 못했지만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그 무엇’을 명징하게 그려내 보인다.


그러나 끝내 발화되지 못한 그것은 아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그 말을 하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의 ‘이상한’ 얼굴만 보인다. 아침의 그 낱말들을 말하기 위해 애쓰느라 일그러졌던 아이의 얼굴에 눈물이 차오른다. 친구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는지를 보고 있는 아이는 고개를 떨군다. 눈물이 떨어져 번진다. 형체가 일그러진다. 색깔을 잃는다. 그렇게 위축되어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아이의 모습이 16개의 분할 화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입이 아예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는 ‘없는 아이’가 되어 턱을 괴고 앉아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앉아 있는 아이의 옆모습이 배경과 잘 구분되지 않는 흐릿한 카키색으로 그려져 있다. 아이의 몸은 언뜻 보면 배경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을 상실했다.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의 차에 타자 아이의 얼굴에 눈과 코가 다시 살아난다. 아빠의 얼굴 표정은 생략되어 있다. 조용한 데 들렀다 가자는 아빠의 말을 들은 아이의 얼굴이 백미러에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조용한 곳에 아빠와 단둘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는 순간, 강 풍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으로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아직도 아이의 머릿속에는 발표 시간이 자꾸만 떠오른다. 자신의 입술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걸 지켜본 그 많은 눈, 키득거리며 비웃었던 그 많은 입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면지에 나왔던 물결 그림이 화면 한쪽에 등장한다. 아이의 마음이 요동친다. 슬퍼하며 앉아 있는 아이 옆에서 아버지는 물수제비라도 뜨는지 돌을 던지고 있다. 인물의 표정을 적절히 생략하는 기법을 통해 인물의 심리상태나 처한 상황이 더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 한마디는 어디에서 왔을까


“엄마, 6학년 때 롤링페이퍼랑 뭔가 좀 다르지 않아요?”


신호 대기하고 있을 때 아이가 불쑥 말했다. 룸미러로 살피지 않아도 어떤 표정인지 짐작이 된다. 이번 학기를 마치며 학급 친구들에게 받은 롤링 페이퍼를 얼마나 흡족해하는지, 언제 그런 방싯 떠오르는 목소리를 내는지 알고 있으니까. 아이 입에서 6학년 때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이 마음에서 일어났던 ‘물거품과 소용돌이와 부딪힘’을 어쩌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던, 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 가장 마음이 많이 긁혔던 그 시간이 말을 거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6학년 때는 친구들에게 맞추려고 했어요. 그게 잘 지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땐 어렸던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맞추려고 하면 오히려 안 맞춰지면서 점점 더 맞추어야 하는 거예요. 오히려 나를 적당히 드러내면 서로 맞춰지면서 더 친해지더라고요. 물론 ‘나한테 맞춰라’ 이런 건 비호감이죠. 그런 거 말고요. 아, 말로 잘 표현이 안 된다, 근데 아시겠죠,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엄마와 오빠의 언어를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기질의 차이가 아니라 능력의 차이로 인식해서 상처 받았던 아이, 그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다 폭발했던 아이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감 차이가 늘 어려웠던 아이는, 경험치를 통계 내어 나름대로 정리한 상황별 대화법을 (이해할 수 없으니 암기해서) 적용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놓쳤던 아이가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렇게 자라났다.


“그런데요, 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친한 친구들도 있지만, 딱 얘! 이런 친구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아, 엄마, 그래서 문제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교우관계 이상 없음!”


아이의 ‘유난히 힘들었던 오늘’에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라고 말해 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 아픈데, 이번에도 나는 신통치 못하다. 여전히 지금 들려줄 ‘한마디’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 머리를 스쳐 가는 이 시시하고 진부한 생각들을 늘어놓고 싶지 않아 꿀꺽 삼켜 버린다.


그림책 속 아빠의 한마디는 어디에서 왔을까? 카메라 앵글이 시선을 내리뜨린 채 등교 준비를 하는 아이를 비추는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았을 아버지,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마음 졸였을 아버지, 학교에서 발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늘 데리러 가던 아버지, 발표를 망치고 속상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강가에 가서 강을 따라 걸으며 돌 위를 건너뛰고, 연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벌레를 잡고, 블랙베리를 딴 아버지, 아버지와 단둘이 강가에 있는 것을 편안해하면서도 요동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아이 옆에서 돌멩이를 던지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그 한마디가 나왔을 것이다. 화가는 아버지의 표정을 그리지 않았다. 어떻게 그릴 수 있었을까? 그 표정을.


그저 이렇게 아이를 태우러 오고, 편안한 장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는 동안, 그렇게 함께 하는 동안 어쩌면 그 한 마디가 떠오를지도 모르지. 소리 없이 흘러가던 어느 날, 포말이 일 듯, 윤슬이 반짝이듯, 폭포가 내리 꽂히듯 ‘나의 말’이 다가올지 모르지.


말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창하게 할 수도 있고, 더듬을 수도 있다. 단순하게 말할 수도 있고 복잡하게 말할 수도 있다. 파도처럼, 강물처럼, 때로는 꽃이 피어나듯 말할 수 있다. 아이에게 나는, 편안하게 말할 수 있고 또한 편안하게 침묵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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