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의 책상 나의 바다

유희충동5_그림책 [나만의 바다]_쿄 매클리어 글_바다는기다란섬

by Maria 윤집궐중


나의 책상


내 책상은 우리 집에서 가장 따뜻한 방에 있다. 이사 오기 전 집을 보러 왔을 때, 창이 전실로 나 있어서 네 벽 모두가 실내와 면해 있는, 집 안에 떠 있는 섬 같은 이 방이 마음에 쏙 들었다. 책상과 책장만 있는 나만의 섬! 나는 꿈에 부풀었다. 가장 작은 방이고 문간방이었으므로 생색까지 내며 나는 이 방을 차지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의 기대와 달리 이 방은 내 것이 되지 못하였다. 따뜻하고 아늑해서 아이 둘과 함께 자기 딱 좋았고, 아이들이 이 방에서 잘 수 없을 만큼 큰 다음에는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가 되더니, 이내 다른 집으로 보내기 위한 옷이나 책 상자들이 거쳐 가는 임시 보관소가 되어 버렸다. 내 방은 섬이 아니라 고속도로 IC 근처에 있는 허브(Hub)였다. 그렇게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작년 여름, 나는 내 방을 찾기로 했다. 집 안에 있는 책장들의 위치를 바꾸고, 내 방에는 나의 책만 꽂았다. 며칠에 걸쳐 이별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나는 내 책상과 다시 만났다. 그 방 그 자리에 늘 있었으나 잊혔던, (결혼 전부터 사용하던) 내 20년 지기 책상의 널찍한 얼굴은 여전히 시원했다.


‘어쩜 늙지도 않고. 그래, 그래, 오랜만이야. 늘 생각했고 가끔은 간절하게 보고팠는데 이제야 찾아왔어. 그동안 내가 너무 소원했지? 이제 자주 만나자.’


그 후, 약간의 우여곡절- 따뜻하고 아늑한데다 쾌적해지기까지 한 내 책상은 인기가 솟구쳤다. 각자의 책상이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줌 회의를 한다, 프린트를 한다, 심지어 분위기를 전환한다’는 이유로 내 책상을 점령함-이 있기는 했지만, 내 책상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그림책, 『나만의 바다 The Specific Ocean』


오늘은 휴가를 떠나는 날이지만 아이는 가고 싶지 않다. 보이는 거라곤 온통 물밖에 없는 그곳에 가지 않고 여기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 그러나 아이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고요의 바다 The Pacific Ocean’가 보이는 네모난 집에 갔다. 이튿날 아침, 오빠는 바다를 향해 뛰어갔지만 아이는 심심한 생활계획표를 세우며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한다. 아이는 왜 바다에 가고 싶지 않을까?


‘물이 차가울 게 뻔하거든. 숨이 멈출 정도로 차갑겠지.’


셋째 날에는 볼멘 표정으로 마지못해 바다로 간다. 바닷물은 소스라치게 차가웠지만 그래도 몸을 담그고 쭉 뻗어 나아갔다. 바위를 따라 헤엄치다 보면 이따금 따뜻한 물결이 느껴졌어.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침대에서 폴짝 뛰어나와 바닷가로 달려간다. 아이와 오빠는 바다 위에 누워서 둥둥 떠다닌다. 바람이 불어 수면에 잔물결이 생기고, 물결이 점점 자라 파도가 되는 것을 본다. 그 파도가 자꾸만 몸을 들어 올린다. 바닷새들과 함께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바다의 시간은 늦는 법도 없고, 급히 서두르는 법도 없어. 누가 누가 빠른가 겨루지도 않지.’





두 개의 이름


아이는 원래 이 바다를 ‘고유의 바다’라고 불렀었다. 오빠가 ‘고유 Specific’가 아니라 ‘고요 Pacific’라고 바로잡아 주기 전에는. 이제 아이에게 ‘고요의 바다’는 다시 ‘고유의 바다’가 되고, 두 개의 이름은 중층으로 포개진다. 두 페이지에 걸쳐 표현된 이 장면은, 이 그림책의 다른 장면들과 달리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바닷속 온갖 생물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 표정을 지니고 있다. 이제 바다는 ‘온통 물밖에 없는’ 곳도 아니고, 물도 ‘따분하고 시시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상이 아니다.


‘차가울 게 뻔하다’는 짐작과 ‘따분하고 시시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오해가 어떻게 ‘나만의 바다’로 전환되었을까? 아이의 마음은 어디에서 바뀐 것일까?


‘그래도 물에 몸을 담그고 쭉 뻗어 나아갔어.’

‘이따금 따뜻한 물결이 느껴졌어.’


이 결정적인 전환이 거의 묻혀 있다시피 쓰여 있다. 이 문장 너머에는, 아이의 몸이 물을 가르고 나아갈 때 바다와 몸 사이에 이루어지는 미묘한 호응이 숨겨져 있다. 마음을 돌려놓는 지점이 늘 대단하고 요란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렇게 흐르듯 스며들어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소유


이제 아이는 해가 뜨면 바위에 앉아 파도를 구경한다. 끝 간 데 없는 상상을 한다.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으면 모든 생각도 걱정도 하나 둘 줄어들다가 사라져 버리고, 딱 한 가지 생각만 남는다.


‘이 바다를 갖고 싶다.’


고유의 바다를 어떻게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지만, 오빠의 조언을 들어보니 모두 다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바다를 그대로 두고 가기로 한다. 다음에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마지막 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의 귀에 소리가 들려온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물러가는 소리, 돌고래와 청어와 고래 소리에 이어 얌전한 바다달팽이와 꾸벅꾸벅 조는 불가사리 소리까지. 고유의 바다가 촉각, 시각에 이어 아이의 청각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이제 아이는 바다가 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내뱉는 숨소리에서도 바닷소리가 들린다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서서히 깨달아간다. 바다를 담아갈 필요가 없다는 걸. 담아갈 수 없어서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담아갈 필요가 없다는 걸.


‘내가 어디에 있든지, 고유의 바다는 언제나 나와 함께일 테니까.’





간직하는 방식


도시에 있는 집에 돌아온 아이는, 책상에 앉아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벽에는 바닷속 생물을 그린 도화지가 여러 장 붙어 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그림책이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나와 함께일’ 고유의 바다를 간직하는 방식이라는 걸.


글 작가의 소유 방식은 그림 작가의 그림으로 인해 더 내밀해진다. 이 그림책의 결정적인 전화점을 문장 속에 심상하게 묻어둔 것처럼 그림 작가 또한 연한 푸른빛과 살구 빛으로 그림책을 그려놓았다. 여름 바다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뙤약볕 내리쬐는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색감도, 붓의 터치도, 내레이션도 태양이 작열하는 느낌이 아니라 필터를 하나 끼워놓은 듯 은은하고 부드럽다. 한여름 바닷가를 태양 한 점 없이 연하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그린 것은, 이 이야기가 마음의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은은한 빛으로 환한 이 그림은 ‘따뜻한 물결’이 되어 독자로 하여금 각자 가지고 있는 ‘나만의 바다’로 걸어 들어가게 한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며 내게 묻는다.


‘당신의 고유의 바다는 무엇인가요? 그 바다에는 무엇이 살고 있나요?’





나만의 바다


옛 연인을 다시 만나면 이럴까? 시간이 날 때마다 책상에 앉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아니 만나고’ 고운 추억으로 남겨두어야 했던 것일까?


마음은 언제나 책상 언저리에 머무는데, 내 몸이 책상에 앉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떠오른 산책길 단상들, 샤워할 때 쏟아져 내린 아이디어들, 제라늄 화분에 물을 줄 때 삐죽이 솟아난 연결고리, 그 모든 것이 떠미는데도 나는 선뜻 책상에 앉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책상과 나 사이에 작용하는 척력은, 우리가 같은 극이라는 증거이자 내가 글쓰기를 열망하는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징표였다. 나의 바다는, 내 손길을 따라 샤르르 고운 선을 그리며 달라붙기는커녕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윈도우 창을 여는 순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감각을 습격해 온다. 기억의 발견은 따스하기도 하고 소스라칠 정도로 차갑기도 하다. 사랑과, 기쁨과, 슬픔과, 아픔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생겨난다(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생겨난다). 윈도우 창 너머로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움이 되어 살아서 움직인다. 애틋하고 서럽고 기쁘고 아프고 아름다운 나만의 바다가.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나는 허둥거린다. 문장이 문장을 낳으며 순조롭게 항해할 때에도, 문장들이 햇빛 과다 노출로 삭아버린 플라스틱처럼 부서져 내릴 때에도 나는 한결같이 쫓기는 심정이 된다. 다 담지 못할까 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까 봐 조급해하는 마음과 진부한 모양새로 드러내느니 신비롭게 묻어두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는 유혹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그 긴장감을 견뎌내느라 내 마음은 방향 없이 서두른다.


마음에 잔물결이 인다. 그래, 진부하고 식상한 글이 될 것을 미리 두려워하지 말고, 그 민망함을 지레 부끄러워하지 말고 일단 써보자. 어설픈 문장으로 그리운 것들이 왜곡되고 오해될 위험을 감수해 보자. 책상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켠다. 나만의 바다, 고요하고 고유한 그 바닷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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