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숲을 보는 법"을 배운다. 기계처럼 단순히 맡은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닌, 내 업무와 연계된 기타 업무까지 체크하면서 유연하고 센스 있게 일처리를 하는 것, 전략 로드맵을 구축할 때 경쟁 브랜드 혹은 기업의 방향성 이상의 범주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것, 영업을 할 때 제품 자랑만 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관계를 쌓아가는 것 등 모두 “숲을 보는 것"에 해당한다. 우리는 노력을 통해 성취하고 가끔은 대판 깨지기도 하면서 인생과 업무를 배워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헷갈리고 혼란스러워할 때가 있다. 그렇게 가끔씩 번아웃(burn-out)이 찾아온다. 이전 글에서는 이와 같은 직장인들을 비롯한 현대인의 고질병에 대항하기 위해 명상, 산책 등을 소개했는데, 오늘은 “숲을 걷는 것”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숲 속을 걷는 것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면역 기능을 증대하며, 수면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이를 믿겠는가?
피톤치드란?
피톤치드(phytoncide)는 ‘식물의’라는 뜻의 ‘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cide’의 합성어다. 물론,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곰팡이 등의 균류와 해충들을 방지하기 위한 자기 방어 기제다. 이 피톤치드가 인간들에게는 좀 더 다양한 효과를 제공한다. 이미 잘 알려졌지만,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진정, 면역력 개선 등의 효과가 있는데, 201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교세포연구단의 이창준 박사와 우준성 박사가 피톤치드가 사람의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방식을 밝혀냈다.
불면증 환자들은 보통 약물 치료를 진행할 때 졸피뎀이나 플루마제닐과 같은 성분을 처방받는데, 이와 같은 성분은 수면을 유발하긴 하지만, 수면의 질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비-렘수면(Non-REM sleep)을 저해한다. 하지만, 소나무에서 발생되는 피톤치드의 성분인 알파-피넨(a-pinene)은 깊은 수면에 필요한 뇌파를 방해하지 않고도 비-렘수면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소나무가 굉장히 많다. 옛 동양화를 봐도 먹으로 표현된 소나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봄에 성대하게 열리는 송진가루 헬파티만 보더라도 소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송진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내 동료들은 엄청나게 고생하지만, 사실 숲 속을 걸을 때 우리에게 선물을 주는 존재가 바로 소나무였던 것이다. 물론, 피톤치드는 소나무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산림욕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칭 리(Qing Li) 박사는 2010년 Environ Health Prev Med에 기재한 논문에서 산림욕을 할 시 선천 면역을 담당하는 자연살해세포(NK cell)의 농도가 높아지며, 아드레날린 수치가 떨어진다고 밝혔다. 이 효과는 산림욕 후 한 달간 지속된다고 한다. 즉,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산림욕을 해도 이와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휴식 시간이 금쪽같은 직장인들에게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피톤치드의 농도는 여름> 가을> 봄> 겨울 순으로 높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도 구경할 겸 근처에 가볍게 등산할만한 곳이 있다면, 친구 혹은 가족들과 가벼운 산행을 떠나보자. 숲을 걸으면서 숨을 깊게 들이마셔보자.
피톤치드와 나의 연결고리
나는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무작정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키는 일을 다하고, 그 이상의 업무도 처리해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신없고, 파괴적이며, 한 치 앞을 알기 어려운 곳이라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나를 채찍질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합리화하며 나의 불안하고 지친 마음에 위안 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이 세상은 피톤치드처럼 알게 모르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긍정적인 빛이 있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뿐. 그래도 이제는 내가 그 빛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 또한 그에게 피톤치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알게 모르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존재가 되어준다는 것은 부정적인 세계관을 깨어주고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그 작은 계기가 큰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