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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Nov 01. 2021

다낭신 환자의 병원 가는 길

 빈혈이 있어서 2개월에 한번씩 꼬박꼬박 병원에 들러 혈액검사를 하고 철분제를 처방받는다. 1년에 한번씩은 CT 촬영을 해서 신장이 많이 커지지는 않았는지 확인도 한다. 그래도 내가 적절한 진료 받을 시기를 놓치지는 않을까 불안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의사가 다낭신에 대해 잘 모르니까. 

 의사라고 병을 다 알 수는 없지. 내과의 경우 소화기 내과가 전문인 사람이라면 신장 내과 질환은 잘 모르는 게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는 병원에는 신장 내과 전문의가 없다. 소화기 내과 전문 세 명과 항상 자리를 비우는 명예 원장 같은 한 사람이 전부다. 그래서 제일 친절한 소화기 내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는다.  


 내가 지내는 곳에서 버스로 2시간 걸리는 대도시로 나가면 신장 내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많고 그 중 한 곳에는 다낭신 질환을 전문으로 볼 수 있는 의사도 한 명 있다. ‘다낭신을 전문적으로 본다’고 말할 만한 의사가 전국으로 봐도 많지는 않다. 다낭신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고 싶긴 한데 쉽진 않다. 왜냐하면, 


 진료를 보려면 평일 하루를 빼야 한다. 가는데 2시간, 오는데 2시간, 진료 보는데 적게 잡아도 2시간은 걸린다.(가끔은 다음주에 또 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요즘은 그래도 옛날보다 좋아졌다. 연차를 쓸 수 있으니까. 나는 연차를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그나마 괜찮은 근무환경에서 지낸다. 하지만 연차는 생리통으로 앓는 날마다 하루하루 쓰고 나면 다 사라진다. 연차를 하루 써서 병원을 가려면 생리통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하루는 출근해야 된다는 얘기다. 

 생리휴가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나는 차마 내 직장 상사에게 생리휴가를 쓸 수 있냐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나는 직장 내 잉여인력이라서, 괜히 엄한 말을 꺼냈다가 잘릴까봐 무섭다. 


 갔다와서도 문제다. 왕복 4시간 버스를 타고 나면 그 다음날에는 몸살을 앓을 위험이 있다. 그러면 연차를 이틀을 쓰든지, 몸살이 나도 출근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감수하고 타지역 병원으로 진료 보러가기란 쉽지 않다. 병원 가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원격진료를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시행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의사 수가 늘어서 내가 사는 도시에도 다낭신 전문까지는 아니어도 신장 내과 전문의 정도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또 의사들의 사정상 그럴 수 없다고 들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큰 마음 먹고 날을 잡아서 타지역 병원을 가면 “왜 이렇게 병을 키워왔냐”고 타박을 듣는다. 돌아가신 엄마가 이 말을 많이 들었다. 병을 키우고 싶어서 키운 게 아닌데. 나도 병원 자주 오고 싶고, 전문의 자주 만나고 싶은데. 


 환경 탓을 하면 끝이 없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병원 가까이 있다고 병원이 내 몸관리를 해주는 것은 아니니까. 몸관리는 내가 한다. 다낭신 전문 의사도 지금 내 신장수치에는 “물 많이 마시고 짜게 드시지 마세요” 이 말 밖에 다른 말은 해줄 게 없을 거다. 


  마음 한구석에 ‘신장 수치는 정상이지만 신장이 너무 큰데 신약을 먹기 시작해야 하는 때인 건 아닐까? 신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큰 병원을 가봐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불안감이 있긴 하지만,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병원 갈 날을 미루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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