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휴직을 했다. 이유를 이야기하자면 그걸로만 책 한 권이 나올 지경이니, 그냥 휴직을 했다라고만 하자. 공식적인 사유는 질병휴직. 우울증이었다. 그렇다. 나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 즉, 우울증 환자이다.
약해진 멘탈만큼 약해진 내 체력을 스스로 느꼈기에, 운동을 시작할 것을 결심했다.
그 즈음 인터넷 블로그였나 카페에서 '런데이' 라는 어플을 이용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고, 휴직을 시작하던 1월, 나는 조금은 충동적으로 그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전이라 등교하는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서, 학교 앞에서 아이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후, 나는 근처 공원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걷기를 시작했다.
운동 초보자를 위한 30분 걷기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나의 운동은 1월 초 추운 날씨에도 땀을 흘리게 했다. 생각보다 속도를 조절해가며 걷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숨쉬기 운동만 하고 살던 내게 빠르게 걷기는 숨이 찼고, 지쳤다. 하지만 등교하는 아이와 함께 나갔기에, 꾸준히 운동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아이와 함께 아침마다 나갔다. 그리고 걸었다.
걸으면서도 런데이라는 어플의 이름처럼 달리기 프로그램들이 나를 유혹했다.
달리기라.
내가 달릴 수 있을까.
학창시절에도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했다. 오래 달리기는 정말 싫었다. 운동장 5바퀴를 헉헉거리면서 달리고, 쓰러지는, 해마다 반복되는 시간은 내게 고통이었다. 어차피 5등급을 받을 체력장인데 안하고 5등급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 홍보하러 나온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선배들의 멋진 제복 모습에 반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성적을 이유로 포기할 때, 나는 체력 시험의 조건을 보면서 포기를 했었다.
그렇다. 나는 운동을 못한다. 정말 못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고등학교 때는 실기시험에 들어가는 다리벌려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구르고 또 굴렀다. 쉬는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 틈만 나면 강당에 가서 구르고 또 굴렀다. 저녁시간에 배드민턴을 치시던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오셔서 이리저리 조언을 해주실만큼 열심히 구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구르지 못했다.
체육선생님은 내게 '우리학교에서 제일 열심히 구르기 연습을 한 아이' 라고 안타까워 하시면서, 우리반 친구들에게 내 등급을 하나 올려주자고 말씀하셨고, 모두가 동의를 해주어 나는 D 대신 C를 받았다. (어차피 -12점이라 '수'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나에게 운동이란 해도 안되는 것이었다. 공부는 죽어라 하면 되는데, 운동은 정말 죽어라 해도 안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이사를 오면서 달리기는 표면상으로는 잠깐 흐지부지되었지만, 내 맘 한 구석에는 여전히 짐으로 남아있었다. 이사온 집 근처 공원에는 걷고 달리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저렇게들 운동을 하는데, 나도 도전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안되면 말지, 뭐. 조금은 무모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걷기 프로그램을 마무리 하고, 달리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첫 날은 1분을 천천히 달리고 2분을 걷는 프로그램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그 1분은 생각 이상으로 길고,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러너스 하이, 라고 어플 속 트레이너 선생님이 표현을 하는, 그 느낌이 있었다.
달리면서 느끼는 쾌감.
짧은 시간 달리지만, 흘리는 땀 속에서 뿌듯함이 있었고, 상쾌함이 있었다.
내가 달릴 수 있을까.
어플 속 트레이너님은 나에게 30분을 달릴 수 있게 해주겠노라 이야기한다.
함께 달리자고. 할 수 있다고.
그 프로그램을 따라 달리면서도 나는 설마 내가 30분을 달릴 수 있을까? 하고 믿지 못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총 8주차 프로그램 중 7주차 프로그램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나는 12분을 달렸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30분을 달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협착증이 있는 내 허리도, 10분을 달리고 나니 쑤시는 내 고관절도 과연 잘 따라줄지 모르겠다.
내가 달릴 수 있을까.
달리면서도 나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달리고 싶다.
마흔 중반, 처음으로 땀을 흘리면서 달리는 것의 즐거움을 알았다.
그리고 40년 넘게 이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던 만큼, 앞으로 40년은 즐겁게 달리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조심스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권해본다.
달려보자고.
울지말고 달려보자고.
이왕이면 웃으면서 땀흘리며 달려보자고.
시작이 반이다.
안되면 말고, 라는 생각으로 일단 나가보자.
나가서 내딛는 한 걸음의 시작이 반이다.
80살이 되어서도 달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