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프티 결과를 받은 지 2주쯤 지났다.
그때의 안도감이 오래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또다시 마음 한편이 불안해졌다.
“정말 아기가 잘 자라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믿음은 늘 불안보다 한 발 늦게 도착했다.
16주가 되는 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맑은 하늘이었지만 마음은 흐렸다.
병원 문 앞에 서자,
‘이번에도 괜찮겠지?’라는 작은 주문을 조용히 되뇌었다.
대기실 안엔 산모들의 숨결이 뒤섞여 있었다.
초음파를 기다리는 긴장감,
그 속에서도 어쩐지 따뜻한 공기가 맴돌았다.
흰 벽과 소독약 냄새,
의료기기들의 삐 소리가 오늘따라 더 선명하게 들렸다.
긴 대기 끝에 내 차례가 되었다.
초음파 화면이 켜지는 순간,
익숙한 ‘두근두근’ 소리가 들려왔다.
“아기 아주 잘 크고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의사 선생님의 담담한 말투에
온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작은 화면 속에서 꼬물거리는 손가락,
움직이는 발끝.
그 모습을 보는 순간,
2주 전의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 정말 살아 있구나.’
그 한마디가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오늘은 신경관결손 피검사와 독감주사를 함께 맞았다.
팔에 남은 따끔함보다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어요.”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더 오래 남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불안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제는 괜찮겠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병원을 나서자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조금 차가웠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가 천천히 풀리는 느낌이었다.
3시간의 기다림 끝에 얻은 건
단 몇 분의 초음파 영상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이 오늘 하루를 다 채워주었다.
‘이 기다림도 언젠가 그리워질까?’
주차장으로 향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다음 병원 예약은 무려 6주 후였다.
순간, 마음이 텅 비는 듯했다.
병원 가는 길은 힘들고 대기 시간도 길지만
그곳에서 아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내겐 가장 큰 위로였다.
어떤 산모들은 이유 없이 병원에 들러
초음파를 한 번 더 본다고 했다.
이제는 그 마음이 너무 잘 이해된다.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는 게, 엄마라는 존재니까.
16주를 지나며 나는 조금 달라졌다.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속에서도 믿음이라는 감정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젠 안다.
불안은 나쁜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걸.
오늘도 배를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괜찮지? 잘 지내고 있지?”
그 대답이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는 기다림 속에서도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이 믿음이 ‘첫 움직임’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