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맛집에서
아침은 호텔에서 푸짐하게, 점심은 간단한 스낵류로, 저녁은 가지고 있는 맛집 리스트 중에서 선택해 먹었다.
베니스는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지만, 해산물을 못 먹는 남편과 해산물을 좋아하는 내가 맛집 리스트의 메뉴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살펴본 후 식당을 선택했다.
언젠가 한국에 있는 친구랑 통화하다가, 친구가 남편한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랬다. 순간 그 말이 너무 생소하게 들렸다. 그 말이 왜 생소할까를 생각해 보니, 한국에선 메뉴부터 정하고 식당을 정한다면, 외국에선 식당을 정하고 거기서 각자가 먹고 싶은 걸 선택한다는 점이 다르단 걸 깨달았다.
서로 장단점이 있는 식문화, 친구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해'라는 문장에서 새삼 한국과 외국의 식문화가 다름을 느꼈었다.
첫날 저녁은 호텔에서 추천해 준 나폴리 음식 전문 식당에서 먹었다.
대낮 같은 저녁 7시에 예약을 해서 그런지 손님도 별로 없었지만, 음식도 다소 실망스러웠다.
야외 테이블에 분위기는 고급스럽고 좋았지만 음식은 딱히 특색없었다. 맛이 없었다기보다는 플레이팅이 별로여서 맛도 평범하게 느껴졌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속담도 있듯이, 플레이팅(plating)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더 느꼈다.
음식을 더욱 맛있어 보이기 위해 이쁘게 그릇에 담는 것이 플레이팅이다. 요즘 음식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플레이팅은 미각, 후각, 시각 모두를 자극해 더 맛있고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간판에 걸맞게 이집의 나폴리식 피자 맛은 일품이었다. 예전에 피렌체에서 처음 나폴리 스타일식 피자를 먹고 반해서 소렌토와 카프리섬에 갔을 때 거의 매일 피자를 먹었던 적이 있다.
내가 느끼는 나폴리 피자만의 특징은 피자 도우가 쫀득쫀득하며 담백한 맛이 더 난다는 거다. 이 레스토랑의 사장이나 셰프 모두 나폴리 출신이라더니 제대로 된 피자였다.
나폴리식 피자보다 더 좋았던 건 식후주(디제스티프, digestifs)로 제공된 수박주였다. 보통 나폴리 지역의 식후주로는 리몬첼로(Limoncello, 레몬주)를 많이 마시는데, 이집에선 독특하게 수박 맛이 나는 술을 줬다. 그것도 한 병을 그냥 줬다.
유럽의 음식 문화는 술도 음식에 맞게 항상 곁들여진다. 식욕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식전주(아페리티프, Apéritifs), 음식을 먹으면서 마시는 와인 그리고 식후주(디제스티프, digestifs).
식후주엔 소화를 시키기 위한 술도 있지만, 보통 이탈리아에서는 그랍파를 마신다. 베니스에선 탈리아텔라란 술을 즐겨 마시고 나폴리처럼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서는 리몬첼로(limoncello)라는 레몬주를 마신다.
달달하지만 도수는 강한 술을 마시는데, 이 식당에서는 독특하게 수박주였다. 슬러쉬 상태라 더위를 식히기에도 좋았고 맛도 좋았다. 맛은 수박과 베일리스(Baileys)처럼 크리미한 술을 섞은 맛이었다. 이 레스토랑만의 비법으로 담근 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술 한 병에 기분이 싹 풀렸다. 동시에 강한 인상을 남긴 집이 되었다.
정말 맛있어서 다 마시고 싶었으나 취할까 봐 두 잔만 마시고 일어났다. 한 병씩이나 무료로 나와서 기분은 무척 좋았지만, 아마 커버 차지에 포함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보통 커버 차지(cover charge)란게 있다.
1인당 2~6유로 정도의 커버 차지가 있다. 거기엔 빵값도 포함되어있는데 아마 이 식후주도 커버 차이에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탈리아에서 커버 차지는 일반적이고 팁을 더 줄 필요는 없다.
이번 베니스 맛집 리스트는 지인 중에 베니스에서 몇 년간 살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 셰프가 추천해 준 로컬 맛집들이다. 맛집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언제나 식도락인 남편 담당이다. 어려서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고 커서는 출장이 잦아 웬만한 곳은 수차례 방문해서인지 남편은 볼거리보다 먹거리에 좀 더 치중하는 편이다.
나랑 달리 편식도 좀 심한 편이라 맛집 리스트 작성이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여행지마다 신중하게 식당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 먹는 즐거움이 꽤 크다는 게 느껴진다. 그 덕에 우린 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선택된 맛집들이 언제나 대만족을 주진 않는다.
알덴테(Al dente),
약간 설익은 느낌으로 삶아야 잘 삶아진 거라고 하는데, 그 설익은 맛이 난 싫다. Dente라는 단어가 치아라는 뜻이랬다. 그런데 베니스에서 먹은 파스타들은 심하게 설익은 것도 아녔고 내 기준에 맞는 알덴테여서 맛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맛나게 먹어서 좋았다. 그 면발의 식감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웠지만 다양한 소스들도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사진은 별로 멋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해산물은 신선했다. 독특하게 생긴 티라미수조차 맛있었다.
코로나 방역지침의 하나로 통풍을 시키느라 식당 내의 모든 창문과 문을 열어뒀다. 모기에 물리기도 했고 중간중간에 에어컨을 틀긴 해도 더운 공기때문에 갑갑했는데 음식은 한 입 먹을 때마다 감탄했다.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였다.
음식이 맛있어서라도 베니스는 다시 또 오게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