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바쁘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뀐다. 둘러보면 항상 뭔가 달라져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일 테니 그들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나 역시 세상과 사람들에게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걷는다. 그러다가 땅만 보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앞뒤 좌우로 두리번거린다. 한 발자국씩 쉼 없이 걸음을 뗀다.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고 어제보다 앞서 있을 내일에 안도한다. 원활한속도감과 자유자재로 뻗은 방향 감각은 내 존재의 이유이며 흐름을 타는 존재감은 성장의 동력이 되어 타인의 인정으로 활짝 꽃피우리라 믿는다. 정면을 응시하고 계속 걷는다.
불현듯 '꼭 그런 걸까'라는 현실 자각이 온다. 나는 무엇을 움켜쥐려고 용을 쓰고 어디에 나를 맞추려고 그렇게 애쓰는가. 성장하고 인정받으며 존재를 확인하는 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건가. 외적 존재감의 부피를 키워 보란 듯 부풀리고 앞으로 밀고 나가기보다내적인 밀도감을 키우면 안 될까. 성장하고 인정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받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이 분명하게 알면 된다. 안에서부터 꽉 차 오르는 그 느낌이 필요하다. 나는 멈추기로 한다. 걸음이 느려진다. 천천히.
스산한 바람에 나무는 매일 앙상해지고 한 해의 끝자락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나를 돌아보고 회상에 빠지는 일이 잦다. 커피를 한 잔 타서창밖을 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20대 중반의 한토막이 그려졌다. 회사 사람들과 외근을 나온 길인데 겨울이면 꼭 맛을 봐야 한다며 그네들이 나를 데리고 갔던 북악스카이웨이 부근 손만두에 대한 기억이었다. 하도 오래전의 일이고 짧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고 차는 산길을 빙빙 돌았으며 서울에 갓 상경해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천지 사방 길눈 어두운 촌년이었던 나는 춥고 허기가 졌기에 더 맛있었던 만두를 그 후로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올리며 머릿속을 헤집어보지만 도대체 어디쯤인지 짐작도 안 갔다. (상호를 알 리 없고) 그래서 꿩대신 닭으로 (아니면 나의 무의식이 맞혔을지도 모를) 자하손만두를 찾았다. 만두는 기억처럼 푸짐하지 않았고 소문만큼 맛이 훌륭하지도 가격에 비해 고급스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기대에 못 미쳐 실망했다기보다는 만두란 '그냥 그런 것'이라는 기대도 안 했던 안심이 되었다. 원칙대로, 하던 방식대로, 묵묵하게 맛을 낸 만두라는 '본연의 존재감'이 거기에 있었다. 유행을 좇고 스타일을 살리고 입맛에 맞추는데 급급하기보다 튀지 않고 과하지 않게 그냥 예전 방식을 지키고 과거를 유지하는 것이랄까. 슴슴하고 연한 국물의 맛과 야들야들한만두피, 인공조미료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속이 꽉 찬 만두소 등재료 본연의 맛에 반한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왔으며끝없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부암동에서 나는서울을 폭 감싸 안은 북악산과 인왕산 그 어디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뜨끈한 만둣국 한 그릇이 있었고 그때 나는 담백하고 단순 정갈한 '자기다운' 맛의 삶을 음미하고 있었다.
만둣집 옆길을 따라 내려와 '창의문'을 천천히 통과했다. 창의문은 인왕산과 북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이며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년 (영조17)에 다시 세웠으며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이 이름을 새긴 현판을 문루에 걸어 놓았다.
부근의 경치가 개경의 경치 좋은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하여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한다.
1900년대 초의 옛 사진을 보며 그 시절 옛사람이 된 나는 흙길을 걸어 고개를 넘고 윤동주 문학관으로 향했다.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윤동주는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친구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했다. 그는 인왕산 주변을 오래 산책했고 주변 경관을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곤 했다.
윗 동네 청운동은 1970년대 인구증가와 아파트 건축으로 고지대 주민들의 급수난이 심화되자 수압을 높여 수돗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청운수도가압장을 세웠다. 그 후 아파트는 철거되고 상수도 여건도 좋아지자 가압장은 2008년에 운영을 중단한 채 방치되었다가 2012년 윤동주 문학관으로 재탄생했다.
이 문학관이 특히 인상 깊은 이유는 물탱크1을 ‘열린우물’로, 물탱크2를 ‘닫힌우물’로 형상화하고 이미지화하여 마치 순수청년 윤동주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숨결에 젖어보는 기분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다.
물탱크 지붕을 개방하여 만든 '열린 우물'은 우물이 있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인의 추억 속 한 페이지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어쩌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마음껏 젊음을 펼쳐보기도 전에 좁은 우물에 갇혀 사그라든 청춘의 안타까움이 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들면 네모로 잘린 창으로 사시사철의 하늘이 보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저마다의 풍경이 내려앉는다. 그곳에는 바람이 불고 억새가 자라고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인다. 한 뙈기의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 없는 자연이라서 그토록 무심해서 가슴 아프도록 아름답다.
'닫힌 우물'은 물탱크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다. 열린 우물 안을 걸어 내려가 둔탁한 문을 밀고 들어서면 어두컴컴한 사위에 발이 멈칫하고 겁이 덜컹 난다. 서름한 천장 한 귀퉁이에 세상과 통하는 작은 구멍으로 한 줄기 빛만이 부옇게 새어 들어오고 사방의 벽은 세월의 때와 묵은 물자국이 켜켜이 배어 있다. 빈약한 빛과 어둠의 무거움, 공허한 울림과 그림자의 잔상,서늘한 한기와 무력한 두려움, 구슬픈 외로움과 아픈 그리움.
후쿠오카 형무소를 닮은 우물에서 스무여덟 짧은 생의 마지막 숨을 토해냈을 시인을 생각한다.
성장이니 존재감이니 인정을 바라보기는커녕 제대로 된 꽃 한 송이 피워 보지 못하고 꽃망울 채 져버린 그의 외롭고 올곧은 삶과 맑은 영혼은 서정적인 시어가 되어 공기 중에 울려 퍼지고, 풍기지도 않는 물비린내에 속이 울렁거리는 순간 나는 그만 눈시울이 뜨겁고 울컥하며 목이 메어버린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자화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나이건만 그립다 느끼는 건 내 마음이 그 마음에 헤아릴 수 없이 가닿았음이고 호흡과 체온이 와닿아 그의 곁에 내가 있다고 고스란히 느꼈음이리라.
한때는 물탱크였던 우물 속에는 하아얀 하늘과 파아란 바람, 말간 가을, 그리고 그리고…… 가엽고 그리운 사나이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