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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움은 어리석은 자의 특성?

by 오성진 Feb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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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에게 모욕을 주거나 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만의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넘어가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잊은 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 많은 책을 읽고 말씀을 들으면서 노력을 했지만,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앙을 가지면 둔감해져야 하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마음을 먹고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 과연 그렇다면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수도사들처럼 수도원에서 매일 자신의 부족함을 다스리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가. 참으로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나의 기본적인 마음은 늘 양보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나눠야 할 것이 있으면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결정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졌고, 내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양보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죠. 그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자세라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내가 하고자 한 일들도 많이 이루었고, 아직까지는 건강하고 의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의 아쉬운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죠.


 너그러움, 양보하는 아음은 정말로 이 삶에서 어리석은 마음가짐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양보하고 손해 보는 것에 대해서 나쁘지 않은 결정을 했다고 스스에게 납득시키려고 해 왔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해 보았다는 생각이 많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남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억에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겁니다. 


 나의 믿음 안에는 내가 견디어 내는 모든 일의 뒤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인식이었지요. 사실 그렇게 산 훌륭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테레사 수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간디,....

적어가다 보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떠오릅니다.


 그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때때로 자신들이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고통이 오히려 자신이 해야 하겠다고 하는 것에 대한 열망을 더 크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루고 나면 그만큼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마음에 품은 것이죠. 그 마음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입니다.. 의미 있는 인내를 한 것이죠.


빅터 프랭클(주 1)은 사람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의 4년 가까운 생활(주 2)을 통해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아 온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수감자 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나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주 3)


강제수용소에 수용된다는 것은, 풀려날 기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유기수는 풀려날 때를 알기 때문에 그 이후에 대한 희망이 있지만, 강제수용소는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죠.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프랭클의 말처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꿈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삶의 희망이었다는 것입니다.


 수용소 생활을 하지 않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자신을 구속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굳이 자신의 상황을 다른 사람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삶을 희망을 가지고 살기는 어렵습니다. 삶의 의미를 아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나에게는 양보하고 손실본 것들의 뒤에 내가 성취하여 채울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여기에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삶의 기쁨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얼마나 많이 의미 있는 삶의 기록을 쌓아 가는가 하는 것이 있을 때 우리는 이 삶을 기쁘게,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동물의 세계와 같은 방송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그 속에서 생존을 법칙을 지혜로 삼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최근의 자기 계발서라든가 심리학 책들을 많이 보고 계시는 것을 봅니다. 거기에서 인간은 진화해 왔으며, 다른 생명체와 마친가지로 종족의 번식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손이 번영을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렇지만 번식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번식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일까요?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들의 깊은 연구를 통해서 나온 과학적인 연구결과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 우주의 문제를 다 이해하게 할 수도 없을 것이고, 더욱이 인류라는 특별한 존재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결과를 낼 수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사람은 우주의 창조주가 아니기 때문이죠.


___

주 1. 빅터 프랭클(1905~1997), 참조할 연대기록 https://www.viktorfrankl.org/biography.html

주 2. 빅터프랭클의 강제수용소 수감기간( 1942~1945)

주 3.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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