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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21. 2024

내 멋대로 할 거야!

볼 빨간 삿춘기

  6시에 끝나야 맞는데 6시 15분이 지나도록 아이가 학원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수업 중에 방해하고 싶지 않아 전화기를 내려놨다. 자식 보내놓고 눈치 보는 죄인의 마음으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떠올리며 참회하며 차 안에서 기다린다. 6월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기온은 한여름처럼 푹푹 찌는 듯 덥고 땀이 난다. 운행을 마치고 주차 중에 차마 시동걸기가 죄스러워 차량 창문을 열고 버텨보지만 금세 얼굴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나마 연 창문 너머로 옆차에 아주머니께서 먼 동네 사는 동생과 이산가족 상봉 수준으로 큰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창문을 닫기로 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 아이가 차의 창문을 두드린다. 문을 바로 열지 않고 창문을 두드리는 모습에 여유가 느껴진다. 여유가 있을 리가 없는데 아이의 모습이 의아하다. 보통 시간 초과돼서 수업을 받을 경우에는 혼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업 잘 들었어? 숙제 다 해갔는데 왜 늦었지? 이상하네."

"혼났어. 음. 혼났는데 혼나는 와중에 마음에 무언가 팍 올라왔어."


표현이 의아하다. 무언가 팍? 화가 났다는 건지. 아니면 용기가 솟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무언가 팍이 뭔지 좀 더 이야기해 볼래? 궁금해서."

"내가 리스닝 숙제를 띄엄띄엄했다고 샘이 이렇게 물렁물렁하게 계속 살 거냐고 모라고 하는 거야."

"다 했다며? 뭐 빼먹었나?"

"리스닝 숙제 몇 부분 빼먹었더라고. 혼나는데 마음에서 혼낼 테면 혼내라 이런 마음이 들었어. 신기하게 내가 전보다 세졌어 엄마."


싸가지에 뻔뻔함으로 업그레이드된 것 축하합니다. 아직 초저녁이라 밝은데 얘랑 기싸움할 생각에 앞날이 캄캄하게 느껴졌다.


"맷집이 생겼구먼. 학원 안 간다고 울고 불고 하는 것보다 나아."

"나는 더 강해졌는데 샘은 저렇게 화내면 기운이 빠질 거 아냐. 마음속으로 기운 빠져라 빠져라 생각했어. 그리고 내 뒤에 수업받는 형아는 숙제 하나도 안 해와서 그 형 오늘 제삿날이야. 크하하"

"형의 제삿날을 좋아하다니 어이가 없구먼"

"아냐, 그 형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내가 샘 기운 30분 정도 빼놔서 아마 덜 혼날걸. 내가 도와줬어."

"그 형한테 한 턱 쏘라고 해야겠네. 형은 왜 숙제를 안 해오냐 선생님 무서울 텐데 신기하네."

"그러게 말이야. 형아 문 열고 들어올 때 이미 샘이 '너 숙제 여기서 할 거면 왜 오냐?'로 시작했어. 그 형 제삿날 크흐흐흐."


와... 인간은 순자 성악설이 맞네. 이 인간 지가 혼날 때는 그렇게 싫어하더니 남 혼나는 건 킥킥대며 재밌어하네.


"난 내가 원해야 하는 스타일이거든?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내 마음 내킬 때 시작 할 건데 왜 다들 모라고 하는지 몰라."


  대단한 반항아 납셨네요. 자기 고집불통에 제멋대로 인 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게 어이없다. 나 샘한테 혼나도 타격감 없고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자기가 이긴 것 같은가 보다. 어찌 되었든 울고불고 타령 안 했으니 오늘은 만족이다. 아들아 '니 인생 니 거'니까 잘 살길 바라며 속으로 빨리 커라 빨리 커라 주문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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