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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maPD Dec 20. 2024

크리에이터 나가신다

글 17개로 50여 일 만에 에세이스트

 이 브런치판에 현직 홈쇼핑 PD는 나밖에 없는듯하다. 인스타엔 맛깔나게 공구하는 홈쇼핑 PD다운 PD들이 많다. 유튜브도 PD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능력자들 천지다. 마흔이 될 즈음_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꿈이 있을 때_ 부업 발굴 삼아 블로그도 해보고 네이버 카페도 건설해 봤지만, 금방 소진되었다. 진심을 담아도 상업적 색깔이 칠해졌는데, 이게 내가 원하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있었다. 글을 쓰면서까지 팔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남편의 한 마디 "본업이나 잘합시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도 수술대에 한 번 오르고 난 후, 삶의 방향성이 180도 바뀌었다. “하루하루 무탈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큰 사고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 더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사랑하자. 욕심을 걷어내니, 원하는 바가 뚜렷해졌다. 본업에 충실하면서 즐거운 취미를 가질 수 있다면? 글은 진짜 나를 찾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막 쓰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과소평가했던 나를, 들이쉬고 내쉬며 내가 파닥파닥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https://brunch.co.kr/@jummapd/2


 10월 25일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고 이 글을 퇴고할 때까지만 해도 괴로움이 혼재했다. 슬초 브런치작가 프로젝트 과정엔 3가지 주제가 필요했는데, 하나는 진짜 쓰고 싶었던 가족이야기, 둘째는 내 삶의 풍요, 여행과 친구이야기, 세 번째는 쓰기는 싫은데 써야만 하는 홈쇼핑 이야기였다. 이은경 선생님이 세 번째 주제를 콕 집어주시는 바람에 간신히 간신히 숙제만 하면서 버텼다. 지금 이걸 해내지 못하면 어떤 글도 써내지 못할 거라 스스로를 압박하며 금요일 연재를 시작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신의 한 수였다. 그 쓰디쓴 약속이 나를 쓰게 했다.


 그러다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 마지막날, 3기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브런치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쓰고 싶어 안 달란 글들이 생겼다. 작가모임 회장으로서 솔선수범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동기들에게 마음 쓰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감동의 순간이 잊히기 전에 재빨리 글로 나누고 감사를 표했다. 어쩌면 나의 독자는 슬초 3기 피오나 작가들뿐일 수도 있기에, 동기들이 읽기에 재밌을 글을, 찾아와 읽어주고 싶은 글을 쓰면서 라이킷과 댓글 풍년을 맞았다. 역시 가장 큰 동기부여는 남을 위한 마음이다.


 

 카톡으로도 글을 쓰는 술술술 작가님들이 모인 빵소모임에 들어가면서 내 브런치는 부풀어 올랐다. [이토록 친밀한 빵] 매거진을 만들고 독촉하는 빵장님 덕에, 숙제를 해야만 마음이 편한 바른생활 루틴이는 열심히 빵글 빵글했다. 밀가루를 기피하던 내가 빵으로 글을 쓴다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빵글을 쓰다 보면 내가 쓰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나왔다. 하루키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에 굴튀김에 대해 써보라고 했던 말을 몸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울) 서(쪽) 지역 소모임 방에서는 함께 책을 읽어나가며 [한 장의 한 방] 매거진을 쓰게 되었다. 책을 완독 하지 못하는 내가 딱 한 장이라도 깊게 읽어보려는 의도로 만든 매거진이었는데, (책)서 (상서로울)서 모임으로 의기투합한 작가님들이 같이 쓰기로 했다. 나의 텅 매거진에 매력적인 감상 글이 쌓인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을 일이다. 함께라는 마법에 의해 읽고 쓰고 운동하는 크리에이터가 태어났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으며 패러디했던 글이 대히트를 치면서 글을 엄청 잘 쓰는 사람으로 오해받았다. 그냥 단어만 몇 개 바꾼 패러디 필사였음에도 독자들이 마침표 끊는 느낌까지 훌륭했다고 평했다. 당연하지. 하루키 글인데. 글이 잘 안 써진다면 좋아하는 글을 약간 비틀어 발행해 보는 재미를 꼭 누려보기를 권한다.

https://brunch.co.kr/@jummapd/18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녹음하여 썼던 글은 어딘가 대문짝만 하게 게재되었는지 3일 만에 1만 뷰를 찍었다. 하루에 몇천 명씩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부부 #대화 이런 키워드와 #한쌍의 원앙 사진의 힘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남편책을 내는 게 궁극적 내 목표인데, 이번 일로 꿈이 쉽게 그려졌다. 그냥 말 잘하는 놈 이야기 열심히 받아 적기로. 대필작가도 작가지. 암암.

https://brunch.co.kr/@jummapd/20

 



 나와 같은 날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신 ‘다정한 태쁘’님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공유하였다.


1. 하루종일 글감생각

2. 쉽게 발행할 용기

3. 완벽하려 애쓰지 않기

4. 작은 울림이 있는가 체크

5. 클릭하고 싶은 제목과 사진

6. 라이킷 요정입니다만

7. 꾸준히 100편 목표


처세9단의 철학 '칭찬받고 싶다는 쩨쪠한 생각' 중에서


 참으로 멋진 글을 수시로 발행하시는 작가님답게 크리에이터 배지의 근거들이 반짝거린다. 작가님의 첫 글은 유난히 내 마음에 남아 캡처해 두고 종종 새기는데. 이 글은 브런치작가 과정 초반 주눅상태일 때부터 큰 도움이 되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나에게 집중하면서 즐길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또 다른 크리에이터 ‘지혜여니’ 작가님의 글도 세심히 읽어보니 참 잘 쓴다 싶다. 독자를 배려해 문단을 나누고 문장이 짧다. 한 문장에 하나의 뜻만. 한 문단에 하나의 메시지만. 독자들의 귀한 시간을 내 부족한 글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읽는 사람의 마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 나는 동기님들의 글을 읽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브런치 과정 시작 전과 후의 가장 큰 변화라면 엄마밥상 대신 라면 돌려 막기? 벌써 이런 수상소감 같은 말을 쓰게 될 줄 몰랐는데, “남편, 딸, 아들 고마워.” 쓰는 시간을 가져오기 위해 요리하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식구들이 지지해 줬다. 엄마 밥보다 라면이 맛있는 게지. 무엇이 더 의미 있는 일인지 매일 고민과 반성을 하면서도 확실한 건 요즘 너무 재밌다는 거.


 

 벗들과 함께 가는 여정이라 즐거운 거겠죠?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멋진 일들이 아주 많이 기대가 됩니다. 오래오래 같이 읽고! 쓰고! 운동합시다. (다음 공동매거진은 운동소모임이고 싶어요 @봄과봄사이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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