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적인 이유로 최근, 술자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끔씩 이유 없이 컨디션이 다운되고 회복이 더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즉흥적으로 잡거나 잡히는 술자리의 영향도 있겠다 싶었다. 엊그제도 난 1분기 목표달성을 축하하는 부서의 회식에 다녀왔고 토요일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원래의 컨디션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병든 닭처럼 졸다 깨다를 반복했고 기름진 음식으로 해장을 하며 여러 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사실 이런 결말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럼에도 늘 술자리를 물리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음이 신기할 정도였다.
너희 엄마에게 오늘 이런 얘길 했다, 올 하반기 그러니까 3분기부턴 술을 끊어보겠다고. 그리고 그전까지는 월에 1회로 술자리를 줄여보겠다고.
술 마신 이후 신체적, 정신적 타격감이 꽤나 오래 지속되는 요즘 부쩍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들고 어떤 때엔 술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것에서부터 독립하여 나만의 길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구태여 술로 사회적 관계성을 유지하는 것이 예전만큼 내게 비중 있는 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여 3월부터는 개인적 자리가 필요한 경우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엊그제의 회식이 3월의 첫 술자리였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나름 노력의 결과라고 본다.)
점심시간 한 시간 십오 분 정도면 하고 싶은 얘기들을 충분히 나눌 수 있고, 오히려 제한된 시간 안에 필요한 얘기들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에 대화의 효율도 높다. 대게 내가 조언을 해주거나 얘기를 듣고 위로 혹은 용기를 줘야 하는 경우다. 회사의 타 부서 팀원들의 요청이 있는 경우 거절하기가 어렵기도 했는데, 이제는 생각을 좀 달리하고 있다.
오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너희들과 좀 더 활동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와의 술자리는 우리 가족하고의 시간을 담보로 할 수도 있다는 거다. 좀 극단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최근 들어 나에게 이런 빈 공간과도 같은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편히 쉬지도, 그렇다고 너희들과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화장실만 들락 거리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인 거다.
난 술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이들하고의 술자리는 더더욱 아꼈다. 지금 보면 이 모든 것이 오지랖이라는 생각이다. 난 좀 더 외로웠어야 했고, 그 시간을 즐겨 좀 더 나다운 삶의 영역에 타인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을 물렸어야 했다. 생각과 창작의 시간이, 봄의 따사로움과 여름의 뜨거운 태양 가을의 상쾌한 바람 겨울의 흩날리는 눈과 함께 버무려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이제와 뒤늦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회사에서도, 아빠는 술꾼으로 통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잘 마시고 좋아하기까지 하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조차 난 그런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니 더더욱 그런 자리에 대해 거절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이런 걱정도 하게 된다. 너희 둘 모두 네 엄마가 아니고 날 닮아 넉넉한 주량을 갖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그 존재를 모르고 자랐으면 하는 두 가지가 술과 담배인데, 벌써부터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서 오늘 난,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 봤다. 오히려 술자리를 가질 시간에 나의 목표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술만 안 마셔도 10kg쯤은 금방 빠지겠다 싶기도 하고.
술에 취하게 되면 불필요한 얘기들을 하게 되고 다음날 후회하기도 한다. 그만큼 술은 무섭다. 당시의 이성적 인지를 마취시켜 감정과 본능의 영역을 확장해 간다. 그래서 대범해지는 것이다. 정신 차려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동을 술은 가능하게 돕는다. 이때의 행위는 진정한 용기도 아니고, 허무만이 남는 것이다. 그러면 적당히 마시는 옵션도 있지 않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쉬운 일도 아니다. 마실수록 우리의 뇌는 마취가 되고 그 감정과 기분에 도취되어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적당히든 아니든 우리는 이에 대한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것이 낮은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너희 엄마는, '내가 살게 증후군'은 가족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안겨주고 대부분의 경우 후회를 남기는 변태적 행위로 정의하기도 한다.
거래처 본부장님이 수년 전 술을 끊고 매일을 6시 칼퇴근을 하고 계신데, 그렇게 정신이 맑을 수 없다 하셨다. 무엇이든 적당한 수준에서 기분 좋게 즐기고 마무리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시간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알게 된다. 소중한 것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고.
보다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오늘과 내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이 자리를 빌려 너희들과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