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걱정 없이 나 자신의 의미에 대해서만 신경 쓸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하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고민하고 또 생각하며 나를 관찰할 수 있던 여유로운 때였지만 그 소중함을 그땐 알지 못했다.
대부분을 친구와 학교와 주변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채운 나였고, 그래야 훗날 내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이라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산은 나 스스로가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지만 지나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배가 되어 떠났다. 그렇게도 잔잔하게만 일었던 물결의 시간이었기에 그저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겼다. 그래도 된다 믿었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뀌었을 시간이 흐른 지금, 어떤 연유에서인지 함께했던 이들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스쳐 지나가는 남이 되었다. 인연을 핑계로 연연했던 그때의 난, 관계로 채워진 시간의 비중이 압도적이었고 그 사실에 뿌듯해하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조금이라도, 나를 더 돌봐야 했다.
아니, 그 시간의 아주 조금만을 덜어내어서라도 혼자되는 시간을 즐겼어야 했다. 공상에 허우적대더라도 나를 더 알았어야 했고 관심을 두어야 했다. 그러다 가끔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을 보탬과 덜어냄 없이 기록하여 나를 찾아가는 이번 생의 여정에 지침으로 삼았어야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애써 외면하지만, 지금의 난 이십 년 전 스물넷의 나를 그리워한다. 시절로의 회귀가 가능하다면, 철저한 외로움에 갇혀 오로지 나 자신과의 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일부러라도 이런 시간을 아낌없이 낼 것이다.
하나의 조건을 두자면, 이 시간의 유일한 벗은 반드시 책이 되어야 한다. 소설에 빠져 나를 돌아보기도, 삶의 의미를 찾아보기도 하며 자기 계발 서적의 도움으로 한껏 성장하는 경험 또한 반복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떤 의미로 세상에 남아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고뇌하고 답하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여물었을 때, 사회 공동체에 나만의 방법으로 기여하게 된다면 성숙된 영혼을 품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소중히 아끼지 못했던 지난 이십 대의 나에게 사무치게 미안해지는 오늘이다.
그러니, 혼자됨을 두려워 말고 깊은 곳에서 울리는 너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그때에만 들을 수 있을 순수함이, 간절함이, 무모함이 앞으로 너희들의 길을 비추고 나다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낡은 책 한 권이 선사하는 오랜 여운이 짙은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등대가 됨을 경험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함은 너희들의 선택이 아니었으나, 존재의 가치는 너희들이 내린 선택에 따른 결과로 빛날 것이기에 어느 순간 선물처럼 다가올 이 시간의 쓸모를 무용케 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