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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Sep 08. 2024

이승환 [가을흔적]

-또, 다시 가을이 오면-

매년 가을이 시작될 즈음이면

이승환의 [가을흔적]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이 노래에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습기가 가라앉아 건조하고 메마른 나뭇잎이

언제라도 부서져서 사라져 버릴 거 같은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런 느낌은 텅 비어 있는 존재의 쓸쓸함,

가을의 허전함 이별의 아픔 같은 감정과 함께

우리를 더 깊은 가을 속으로 이끈다.


MBC FM PD로 일할 때는

내가 그해 가을에,

우리 방송국에서 제일 먼저

이 노래를 트는 PD가 되고 싶어요

좀 이른 늦여름에 이 노래를 틀기도 했었다.


한 번은

<윤종신의 2시의 데이트>를 연출할 때

내가 이 노래를 선곡하니까

종신 DJ가,


“아! 매년 라디오에서 승환이 형의 이 노래가 들리면

가을이 왔다는 생각을 해요”

라고 말을 해서,


'역시 우리 DJ가 내 선곡 의도를 알

아 주는구나'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었다.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성시경, 김동률, 박효신, 이승환, 윤상 등의 발라드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유독 MBC FM을 사랑해주기도 했었다.


당시에 내 곁을 지켜주던

(지금은 나를 떠난) 내 아내도

내가 퇴근하고 집엘 가면

“오늘 오빠 라디오에서 이승환 노래 잘 들었어 “

라고 말해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난

내 친한 친구는

본인은 절대로

‘우는 소리의 발라드’는

안 듣는단다. ㅎㅎ


나의 경우,

내 어린 시절 형이 사고로 죽고

우리 가족과 내 주위엔 온통 어둠만이 가득했었다.


내 유년기와 사춘기의 시간들은

늘 우울했고, 늘 불안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엔 자주 울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에겐 이승환의 [가을흔적] 같은 노래가

위로가 되었었다.


그리고 나는 어리석은 고집쟁이라서

라디오 연출을 할 때

주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었다.


당시에 우리 방송국의 간부들은

PD의 자율성을 엄청나게 존중해 주었기에

PD가 어떤 노래를 선곡하던

그건 PD의 자율성의 영역으로 남겨두었었다.


하지만 내 동기나

후배 PD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보다도

청취자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많이 선곡하는

좋은 PD이자, 현명한 PD였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 역시

좀 더 폭넓은 선곡을 할거 같다.


그리고 내 친한 친구의 음악 취향과 관련해서는

누군가는 아픈 상처의 기억 때문에

슬픈 노래를 듣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나의 경우,

슬픔과 우울 속에 잠겨있는 동안

더 안정감을 느낀 경우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세상에는 많을 테니.


PS1. 늘 불안함에 침잠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의 우울함은,

그래서 나의 20대 막바지에 개봉했던

왕가위의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그토록 좋아하게 만들었던 거 같다.


통조림의 유효기간을 세며

이별한 시간을 세어가던,

빗속 금성무의

슬픈 독백을 나는 사랑했었으니까.


PS2. 얼마 전 페이스북에 뜬 과거의 오늘 사진을 보니

'우리들은' 7년 전 오늘 파업을 했었다. 상당히 긴 파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 박근혜 정권은 MBC에 상당히 강도 높은 탄압을 했었으니까


우리들은 낮에는 시위를 하고 밤에는 함께

이런저런 펍을 찾아다니면서 함께 음악을 듣곤 했었는데,

신촌 어느 펍에서 이승환의 [가을 흔적]이 나오자

다 함께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현 정권도 여느 보수 정권이 늘 그랬던

MBC에 대해서 이런저런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듣게 된다.


과거의 동지들이 힘을 내서 지혜롭게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가길 빈다.


#이승환

#가을흔적

#MBCFM

#윤종신

#친구 #왕가위 #금성무 #중경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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