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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소품 小品-7]

by 노힐 Mar 17. 2025


[소품 小品-7] 【 겨울나기 】


"누나, 나야."

"날도 추운데 이 밤에 톡?"

"정말 추운 밤이네. 손이 곱아서 타이핑이 힘들어."

"밖이야? 조용한데 있나 봐."

"바깥보다 더 추운 꼴방이라면 믿어져?"

"네 방이라고? 춥다니 잘됐네. 찬물 한잔 마시고 얼른 해골 굴려. 내일 봐."

"아니 아니 누나. 잠깐. 정말 추워서 그래."

"그러니까 전기장판 밑에 얇은 담요 라고 했잖니."

"그게 아냐. 주인집 여행 갔나 봐. 전기고 난방이고 다 내린 것 같아. 아무도 없어. 전화했더니 착신 안된데. 메시지도 확인 안 하고 있어."

"어이구... 너는 왜 그리 일이 꼬이냐..."

"얼마나 추운지.. 누구라도 붙들고 얘기하고 싶어서..."

"나 좀 씻고 올 테니까 떠들어대고 있어 봐."


"가로세로 손뼘으로 잴 수 있는 이 방은, 그러니까 눈뭉치 속에 든 돌멩이 같아. 방바닥은 얼어붙어서 바닥이 불룩하게 솟은 느낌이 들어. 흰 다리 새우처럼 웅크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소용이 없어. 급성편도염에 걸렸거나, 산채로 팔한지옥에 떨어진 것 같아. 몸이 와들와들 떨려. 이대로 있다가는 바닥에 이불  째 붙어버릴 것 같다니까. 차라리 밤새워 걸어 다니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 이보다 더 춥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젠 감각도 무뎌지네."

"많이 추워? 옆에 있다면 내가 호호 불어주기라도 할텐데..."

"이 빌어먹을 추위라니.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누군가의 따뜻한 품에서 솜사탕처럼 녹아버리는 것이야. 점심으로 미지근한 국수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택이 형이 사 온 멍게와 군납 양주로 저녁을 대신했기 때문일까... 택이 형이 품속에서 소중하게 꺼내든 군납 양주라니.. 택이형 알지?"

"알지... 화상 흔적이 있는..."

"맞아. 그 형이 갖고 온 멍게와 양주 탓일 거야. 코에서 푸른 냉기가 나온다니까! 이 쪽방 안에 온통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차있어!"

".....쩝....."

"우리 덜 떨어진 삼총사가 누나 자취방을 방문했던 거 기억나? 동아리 모집 때. 작은 창에 걸린 가르마 같은 커튼과 소담한 책상. 누나는 그때 빵을 구워줬는데. 갈색 쨈이 빵에 발리는 소리만 들어도 군침이 돌았어. 한참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누나가 더없이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았어. 멋쩍어서 빵을 더 구워달라고 했더니 그래그래 하면서 웃더라. 털이 다북한 양말 속에서 누나의 발가락이 꼼지락 거리는 것을 살짝 훔쳐보기도 했어. 아, 참 따뜻한 기억이었네."

"구멍 난 양말이 아니었기를 바래. ..... 어떡할 셈이니? 언방에서 꾹 참고 하룻밤을 보내거나 근처 카페에서 죽치거나. 알아서 해."

"....... 누나, 내가 그리 가면 안 될까?"

"어머, 얘 좀 봐. 무슨 말이야 그게."

"......."

"......그리고 셋이 자기에는 방이 너무 좁아."

"셋?"

"......친구가 와 있어."

"남자 친구?"

"그만 하지? 도무지 성장을 모르는 철부지군. 밤새 돌아다니며 정신줄 당겨봐. 끝에 뭐가 나오는지."

"그래야겠다."

"그러다니?"

"돌아다니라며?"

"......."

".....잘자. 누나."


나는 톡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른 대화방을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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