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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이 마을에 도착했다

2024.4.3.

by 친절한 James Apr 03. 2024


"그래, 이때쯤이었지 아마. 

 그 사람이 여기 나타난 게."

L은 천장 구석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삐그덕 끽끽."

해어진 청록색 벨벳 좌석을 뒤집어쓴 

은갈색 흔들의자는

해가 갈수록 질량을 더해가는

L을 지탱하느라 진땀 빼는 신음소리를 냈다.

아마 20년 세월 중 가장 힘든 때가 아닐까.

"내가 젊었을 때, 

 뭐 지금도 아주 늙은 건 아닌데,

 이 의자를 시내 빈티지 가구점에서 

 큰맘 먹고 샀을 때였어. 

 영국이었나 독일이었나, 

 아무튼 유럽에서 만든 거라고

 가게 주인이 엄청 강조했었지. 

 다른 의자랑 고민하다가

 이걸 선택했는데 지금껏 

 잘 쓰고 있으니 잘 골랐지 뭐야.

 아무튼 매화 꽃봉오리가 돋아날 무렵이었지. 

 그 사람의 등장 말이야."

샛길로 빠지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L의 스타일에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했다.

적당히 흘려듣고 추임새를 맞추면

몇 시간이고 신나게 떠들었다. 

Y는 L의 그런 점이 오히려 편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는 잘 모르겠다. 


"혼자였나요?"

남의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한 S가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물었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어. 

 Q가 마을에 한 달쯤 머무르며

 동네 사람들과 안면을 좀 가지니까 

 자기 가족 이야기를 하더군.

 아내와 두 아이가 있고 바닷가 마을 H에서 

 자기 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그런데 왜 여기 왔어요?"

S 옆에서 졸음을 삼키던 K가 입을 열었다. 

말수가 없기로 소문난 그가 

질문할 정도면 이야기에 관심을 둔다는 거지.

"뭐, 그 당시에는 

 원래 살던 곳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여기로 왔다고 했어. 바다에서 

 어부 일을 좀 했나 본데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더라고."

"그런데 이런 시골 구석에 

 할 일이 있을까 싶은데."

"그래, 그때라면 지금보다 

 더 살기 어려웠을 텐데.

 큰 도시들을 두고 

 여기에 올 이유가 있었을까."

"그게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점이야. 

 먼지 냄새날 것 같이 옷차림은 남루한데

 씀씀이는 의외로 컸으니까. 

 집에서 가져온 돈인가 했는데

 별 말이 없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지. 

 식당에서도, 시장에서도 돈을 잘 쓰니까

 동네 사람들을 별로 싫어하지는 않았지. 

 몇몇 사람들만 빼고."


민감한 사람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말을 하지.

예감, 육감, 뭐 그런 거 같은데. 

흔히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 

그런 추측이 맞아떨어질 때가 더 많아. 

지금은 없는 R도 그런 분류 중 하나였다. 

"R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었지. 

 5남매의 가장 역할을 하기에 참 어린 

 나이였지만 구김살 없이 자랐어. 

 참 열심히 살았지. 

 아빠 몫을 참 잘 해내었어.

 세상 사람 모두가 좋아하기만 할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R은 그런 사람이 

 되기에 충분했거든."

"저도 엄마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정말 좋은 어른이었다고."

T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그런 R이 그 낯선 사람에게는 

 적대감을 드러내더군.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다들 놀랐지. 

 옆집에 살았던 U 부부도

 R에게 그런 말을 했다더군. 

 사정은 몰라도 가족과 떨어져 여기까지

 왔는데 좀 잘해주면 어떠냐고. 

 그래도 R은 찬바람이 쌩쌩 불었어. 

 왜 그랬을까?"

잠깐의 고요. 

좁은 마을회관 거실은 

어색한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혹시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서로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나 봐요."

Y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L은 의자에 기댄 몸을 일으켜 

테이블 가장자리에 앉은 Y를 응시했다. 

"아니면 말고요. 무슨 이유가 있었나요?"

"그건 말이야, 

 이 마을의 역사를 뒤바꾼 엄청난 일이었지. 

 일찍 세상을 떠난 내 동생과도,

 그리고 Y 네 어머니와도 관련이 있는 일이란다."


오래전, 낯선 사람이 마을에 도착했다.

혈연의 슬픈 복수와 눈물 가득했던 그 사건,

이 모든 사건은 그때로부터 시작했다. 


https://youtu.be/ihGCflRjIq8

낯선 사람이 마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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