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캠프는 2주간 해외의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세계 각국에서 온 팀원들과 교류도 하고, 시간이 되면 여행/관광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신청서를 작성해서 합격해야 하고 2주간의 숙식과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참가비를 내야 한다. 한마디로 자원봉사를 하러가는 데 내 돈도 내고 서류 전형에 합격도 해야 한다. 물론 서류 전형은 참여 의지를 보려는 거라 불합격을 신경 쓸 만한 것은 아닌 듯했지만, 어쨌든 뭔가 글을 써내야 한다는 건 번거롭고 부담스럽다.
이런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나라에선 주로 자원봉사 스펙을 쌓기 위한 일부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2주 이상의 시간을 통째로 비울 수 있는 직장인이 드물테니까. 실제로 내가 만난 해외 참가자들도 대부분 대학생들이 많았는데, 종종 대학원생들도 있었다. 일부 대학원은 한 학기 정도의 해외 인턴쉽을 요구하는 커리큘럼이 있어서, 6개월 정도 장기 워크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해외 인턴쉽을 대체하기도 했다. 다만, 눈에 띄는 건 휴가로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직장인들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다는 거다. 주로 휴가를 길게 쓸 수 있는 유럽 참가자들이었는데, 그 휴가를 워크캠프에 활용하려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참가자들과 달리, 내가 워크캠프에 참여한 계기는 순전 ‘소심함’이었다. 안전한 우연을 꿈꾸다가 찾은 방법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이 몇 년째 계속될 때, 이렇게 살다간 별로 다른 내일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을 때, 여행이라도 떠나면 뭐가 바뀔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여행 하나로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인생을 바꾸는 인연을 만날 걸 기대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내가 매일 보던 사람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픈 기대는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부풀어 오르는 기대를 단박에 터트려주는 책 속 장면 하나를 늘 마음에 품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란 책이 있다.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란 부제에 걸맞게, 두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저자의 체험과 시선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책이었다. 사실 읽은지 오래되어 두 사회의 시스템과 저자인 미국 변호사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아있는 게 없다.
엉뚱하게 내 마음 속에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불쌍했던 대학교 친구 짐’만 남아 있다. 짐은 대학교 1학년 때 ‘레츠고 유럽’ 책 한 권 달랑 들고 유럽 일주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몇 주만에 외로움에 지친 채 되돌아갔다. 간신히 보스턴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할 힘을 쥐어짤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몇 주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터라, 자신의 몰골을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어머니 앞에서 말도 쉽게 안나왔다고 했다.
내가 순전한 우연을 기대하며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짐과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낯가림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선 경계심이 상당히 많이 발생하여 어지간해선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매일 하루 그날의 미션을 달성하듯,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까지 가는 교통편을 찾고, 무사히 숙소까지 돌아오기만 했을 것 같다. 숙소에 돌아올 때까지 날이 바짝 서서 경계하며, 목적지만을 바라보는 매우 좁은 시야로 주변에 한 눈 팔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우연을 바라며 떠나는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찾은 게 워크캠프였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전혀 정보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공통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 ‘공통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흘러갈지 긴장도 되지만 설렘도 있다. 그 속에서 우연히 만날 사람들, 사건들.
물론 불편한 숙소, 단체 생활에 대한 우려도 조금 있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앞 뒤로 며칠의 여유를 두어 혼자 여행하는 시간도 뒀다. 한번쯤 꿈꿨던 나 홀로 여행. 이제 낯선 곳으로 혼자 떠나도 ‘불쌍했던 대학교 친구 짐’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