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 옆자리의 우연도 달랐던 멕시코

by 헤스티아

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우연이다. 그리고 비행기나 장시간 이동하는 기차의 옆자리는 늘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대부분 옆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서로 피해 안 주고 자기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가는 경우가 많지만, 내 공간을 넘어 침범하는 무례한 사람과 함께 가야 할 때도 있고, 어떻게 말을 터서 가는 내내 담소를 나눌 때도 있다.

요즘은 그런 일이 별로 없는데, 예전에 기차를 탈 때는 홍익회 직원이 지나갈 때 음료나 과자를 내 것만 사지 않고 옆자리 사람 것도 같이 사서 주기도 했고, 그걸 계기로 말을 터서 남은 여정을 좀 더 즐겁게 보내기도 했다. (가끔 음료만 전해주고 끝까지 조용히 가는 사람도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 옆 사람이 외국인이면 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캄보디아 워크캠프 갈 때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스리랑카에서 한국에 일하러 왔다고 했다. 고향의 아들에게 줄 선물과 최신 갤럭시 폰을 챙겼고, 가장 멋진 옷 중 하나를 꺼내 입은 게 분명한 흰 옷을 입고 있었다. 흰 옷에 대비되어 눈에 띄는 까무잡잡한 손에는 공장에서 크게 다쳐 수술한 자국이 선명했다. 내가 창가에 앉아있어서,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려주길 원하냐고 말을 튼 후, 처음엔 영어로 대화를 하다가 나중엔 한국어로 대화를 했다. 그 아저씨가 한국사람과 한국말을 이렇게 길게 한 건 처음이라고 해서.



이처럼 비행기 옆자리에선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데, 멕시코 여행의 우연은 조금 더 남달랐다. 학교 다닐 때 세계 지리책에 2D로 박혀있던 활자가 4D로 살아 움직이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흙수저, 금수저 수저 논란이 많고 갈등이 심하긴 하지만, 멕시코에선 수저가 인종으로 가시화되는데서 낯섦을 느꼈다. 뭐, 지금이 신분제 사회도 아니고 수저가 계급까지 나누진 않겠지만, 인종과 계층은 비례하는 경우가 많았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멕시코 중산층일 것 같은 백인 노부부가 옆자리에 앉았다. 함께 두 시간 정도 가야 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로 인사를 건네고, 내가 그들 눈에도 외국인이다 보니 영어로 자신들이 미국에 가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 요지는 자식이 미국 대기업인 MS에 다니고 있고, 그래서 아들 보러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으면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할만하겠지만, 생판 모르는 남의 아들 자랑을 길게 듣고 있는 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허기가 느껴졌다. 참고로 멕시코와 미국을 오가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내 기준에선 국제선인데도) 기내식이나 간식, 음료 서비스가 전혀 없었다. (필요하면 추가 요금을 내고 구입할 수는 있다.)


마침 비상용으로 가지고 탄 쿠키가 있긴 했는데, 바로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야 해서 그 비행기의 기내식이 나올 때까지 나의 비상식량은 이게 전부였다. 얼마 없는데 나눠먹어야 하나 눈치를 좀 보긴 했지만, 그래도 쿠키를 권했다. 그랬더니 노신사가 “No.”라고 가볍게 거절했다. 예의상 거절하는 줄 알고 다시 한번 권했더니, 엄청 정색을 하며 “No.”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찌나 단호한지 살짝 민망했다. 그 이후로 난 (다행히) 혼자 조용히 과자를 먹었다. 남은 비행시간 동안 더 이상의 아들 자랑은 없었다.



사실 그 순간엔 좀 무안할 지경이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노신사 입장도 이해가 될 것 같다. 그 노신사가 간단히 거절했을 때 내가 다시 한번 또 권해서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의 의사를 더 확실히 전달하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도시괴담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동남아나 인도 등지를 여행할 때 옆자리 사람이 준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큰일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안에 약을 탔을 수도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살던 한국 문화에선 옆자리 사람들과 여행할 때 음식을 나눠먹는 게 이상하지 않아 서운했는데, 이제는 우리도 알 수 없는 음료를 함부로 받아먹으면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게 착잡하다.)



아무튼 해외여행 중 만난 멕시코인들은 아무래도 중산층일 확률이 높다. 내가 제일 처음 만난 멕시코인은 프랑스 어학연수를 왔던 멕시코 교수였는데, 그때 “이곳 프랑스에서 내 생활은 너무 불편하다. 청소해 줄 사람, 요리해 줄 사람이 없다.”는 표현이 생경했다. 내겐 원래 없는 옵션이어서 그런지 성인이 청소와 요리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걸 불편하다고 징징대는 게 성숙하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에 처음으로 국제선이 아닌 국내선의 멕시코 사람들을 만났다. 하필 내가 가는 곳이 멕시코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치아파스 주였는데, 이곳은 멕시코 내에서 인디헤나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었다. 인종에 따라 소득의 차이가 크고, 그래서 가시적으로 수저가 구분되는 곳. 이 나라의 아픈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에 대해 제삼자로 가볍게 참견하기엔, 아직도 청산 안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도 만만치 않기에 뭐라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멕시코에서 비행기를 타면,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세계지리책 한 문장으로 압축되며 휘발된 의미가 아주 살짝 채워지는 듯했다. ‘멕시코의 인종은 백인, 인디헤나, 이들의 혼혈인 메스티소로 되어있다’라고 한 마디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많이 삭제된 의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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