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착길 Oct 29. 2020

서리 단풍

서랍 속에 담아 둔


서리 단풍


큰 아이 유치원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자

택시를 불러 타고 부랴부랴 등원을 시킨 후

작은 아이 손 잡고 걸어 돌아오는 길

나무 아래 쌓인 낙엽 위로

아! 서리!

벌써 내려앉았구나

바시락 바시락

아이와 서리 내린 낙엽을 밟다가

아침햇살에 하얗게 반짝이는 단풍잎

아이도 예쁘다고 줍는다

엄마는 그 모습을 담는다

아이 덕분이다




3년 전 그날, 힘들었을 법한 데도 여유가 있었네.

아기도 있는데 부랴부랴 챙겨서 시간 맞춰 유치원 버스에 태우는 게 크나큰 미션이었지. 딱 한 번 차를 놓친 적이 있었는데 큰 아이를 보내고 걸어 돌아올 때 보았던 서리 내린 단풍이 어찌나 예쁘던지. 차를 놓치지 않았으면 볼 수도 만질 수도 작은 아이에게 보여줄 수도 없었겠지. 큰 아이 때문에 고생이라는 생각이 우연히 만난 아름다움에 큰 아이 덕분으로 바뀐 순간이었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작은 것들을 위하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제일이었던 때였지.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니?

아이들은 그때보다 많이 자라서 더 큰 사랑을 원하고 더 크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데 난 무슨 생각으로 이러고 있는 거니. 여전히 아름다운 단풍도, 음악도 글도 큰 힘이 되질 않아. 많이 지쳤나 봐.

육아의 제일은 아이의 몸과 마음의 건강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돌보고 있는데 사실 쉽지는 않아. 학교와 유치원, 동네의 생활을 무난히 하면서 서서히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어. 그런데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느긋하게 적절한 교육을 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몸과 마음이 느끼고 있나 봐. 몸이 좋지 않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땐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정신없이 세파에 휩쓸리지. 그러고는 후회하잖아. 그래서 지금은 차분하게 시간을 가지면서 아이들을 지켜봐야겠어. 그러면서 나를 돌볼 시간을 갖자.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글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11월엔 서리 내린 단풍을 찾아 나서볼까. 아이들 덕분에 만난 모든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전 20화 별 같은 아들과 살 같은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